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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문 "군대 오길 잘 했다"

02.03 17:26

배상문 [김종우]

군대는 춥다. 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에 있는 육군 모 부대 위병소를 통과하니 군대 특유의 한기가 확 몰려들었다. 그래도 서른 살 이등병 배상문의 표정은 비교적 밝았다. 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그는 기자가 들고 간 비타민 음료 상자의 여성 가수 모델 사진을 보고 “와! 수지다”라면서 좋아했다.

배상문 이병이 즐거운 건 얼마 남지 않은 휴가 때문이다. 그는 “설 직후 첫 휴가를 나가며 3월 1일엔 일등병이 된다”면서 “휴가를 고대하고 있지만 날짜를 세면 오히려 시간이 안 간다고 해서 현재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해 11월 입대해 5주 훈련을 마치고 12월 자대에 배치됐다. 계급은 가장 아래인데 부대원 일반 병들 180명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배상문은 “앳돼 보이는 스무 살 선임이 ‘상문아’하고 나를 부르는데 너무 어색해 앞으로 어떻게 살지 갑갑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존대 말이 나오더라.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골프는 개인종목이어서 단체생활이 쉽지는 않다. 배상문은 “남자들끼리 모여 살며 함께 운동하는 게 재미있다. 살면서 이런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즐겁게 여기고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운동선수인데 병영 내에서 운동실력이 최고는 아니다. 배상문은 “축구를 잘 할 줄 알았는데 냉정히 판단해 내 실력이 형편 없었다”고 했다.

체력 단련에 힘을 쓰고 있다. 배상문은 “훈련소에서는 단 것이 당겨 초코파이 같은 것을 과도하게 많이 먹었다. 운동 많이 하는데도 살이 쪘다. 지금은 단 것 안 먹고 운동만 열심히 한다. 제대할 때 멋진 몸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배상문은 또 “투어에서 뛸 때 10~20야드 더 멀리 치면 메이저 대회든 어디든 더 유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거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군대에서 열심히 운동하니 20야드가 아니라 30까지도 늘릴 수 있겠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부대원들과 함께 2.5km 알통구보를 한다. 배상문은 “뛰고 나면 기분은 좋은데 춥긴 되게 춥다”고 했다.

그의 보직은 주특기 일빵빵(100)인 소총수다. 아직 이등병이지만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어서 욕심도 많다. 배상문은 “사격은 호흡이라고 들었다. 호흡은 잘 하는데 이상하게 총알이 똑바로 안 나간다. 군대 오기 전에 퍼트가 안 되면 혼자 연습할 수 있는데 사격은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입맛을 다셨다. 그는 “더 연습해서 백발백중, 만발만중의 사수가 되겠다”고 능청도 떨었다.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도 느꼈다고 한다. “훈련소 퇴소할 때 어머니가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 그 전에 ‘어머니 은혜’ 노래를 부를 때 부터 감정이 북받쳐 엉엉 울었다. 우승할 때도 울어본 적은 없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승부여서 경기 끝나고 나면 울겠다 싶었는데 항상 기뻐 웃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도 많이 울었다. 불과 5주지만 훈련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나라사랑이 뭔지도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부르다 감정이 울컥할 때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외국에 가서 시상대에 올라 애국가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20대 초반에 군대에 다녀와서 올림픽 같은 곳에 나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늦게라도 애국심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군대에 잘 왔다고 말했다. “입대 전 1년 동안 군대 고민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뒤통수 쪽에 원형탈모증도 생겼다. 지금은 잠 잘 잔다. 매년 해외 대회에 나가거나 전지훈련하느라 설에 한국에 있는 것은 거의 10년만이다. 즐겁게 생각한다. 그러나 원형탈모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구멍이 오히려 좀 커진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배상문은 제대하고 나서도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배상문은 "입대한 뒤엔 골프 클럽을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다. 가끔은 골프를 잊을까 불안해서 휴식시간에 맨손으로 빈스윙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체력을 기르면 제대한 뒤에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오랜 시간 후의 일이다. 국방부 시계는 천천히 돈다. 늙은 이등병은 일단 며칠 앞으로 다가온 첫 휴가 때문에 즐겁다.

원주=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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