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점에 선 김경태 "난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01.03 11:03

김경태(30)는 ‘한국 남자골프 국가대표’로 통한다.
한국과 일본 아마추어 대회를 평정하며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했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르며 진가를 발휘했다. 2007년 프로 데뷔전 토마토 저축은행 오픈에서 우승하며 ‘괴물’의 등장을 알렸다. 프로 데뷔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KPGA에서 김경태가 처음이었고, 매경오픈마저 제패하며 프로 2연승을 내달렸다. 그해 3승을 챙긴 김경태는 신인왕을 비롯해 대상, 상금왕, 최저타수상을 모두 석권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국가대표 골퍼답게 김경태는 2010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를 정복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일본 투어 상금왕에 올랐다. 승승장구했던 김경태는 이듬해 세계랭킹 18위까지 뛰어 올랐고, 인터내셔널팀 대표로 뽑혀 프레지던츠컵에도 출전했다. 김경태는 유럽과 아시아의 대륙대항전인 로열 트로피의 아시아 대표로도 3년 연속(2011~2013) 선정됐다.
2여 년의 부진을 딛고 김경태는 2015년을 다시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5년 만에 다시 JGTO 상금왕에 오른 김경태는 한국 선수 최초로 JGTO 통산 10승도 채웠다. 그렇지만 김경태는 지난해의 환희와 영광을 2015년에 묻어뒀다. 김경태는 “여전히 난 우물 안 개구리”라며 새로운 목표를 향한 담금질에 돌입했다. ‘아시아의 국가대표’였던 김경태는 이제 ‘세계의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한다. 올해는 112년 만에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해이다. 그래서 태극마크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달려온 김경태의 심장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김경태는 올해 첫 대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15일부터 사흘간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와 유럽의 대륙대항전 유라시아컵이 첫 무대다. 김경태는 “한국 선수가 3명이나 뽑혀 자부심과 기대감이 큰 대회다. 안병훈이나 왕정훈 프로와 짝을 이뤄 한국 골프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국가대표로 줄곧 활약했던 김경태는 팀 대항전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번 유라시아컵에서도 통차이 자이디(태국)와 함께 아시아 팀의 기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경태는 “대륙대항전 경험도 있고, 나름의 노하우도 있기 때문에 자신 있다. 그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뛴 대회의 성적표도 나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11년 프레지던츠컵 때 세계 정상급 골퍼와 대결에서 김경태는 2승2패를 거뒀다. 2011년 로열 트로피에서 1승2패로 패가 많았지만 2012년과 2013년 같은 대회에서는 각 1승2무를 기록해 패가 없었다.
세계랭킹 60위 김경태는 리우 올림픽 출전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29위 안병훈에 이어 한국 선수로 두 번째로 랭킹이 높다. 군 복무 중인 배상문(115위)을 제외하고 148위 이경훈이 추격하고 있지만 김경태와 격차는 꽤 크다. 김경태는 “2016년 목표 중 하나가 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은 투어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메이저 우승과 올림픽 메달을 선택하라면 메이저 우승이 먼저라고 한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이 더 값진 훈장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는 "사람들이 올림픽 메달리스트 더 알아주고, 올림픽 메달로 골프가 더 대중화되고 인기를 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권만 얻으면 메달 획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단일 대회고, 세계 톱랭커 중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도 많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메이저 대회보다 우승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올해 또 다른 목표는 미국 진출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를 정복한 김경태는 가장 큰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꿈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다. ‘세계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미국 투어 시드도 있어야 한다. 그는 “2012년 기회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시행착오를 거쳤기 때문에 올해는 PGA 투어 진출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출전권이 있는 PGA 투어 대회에서 포인트를 쌓아서 페덱스컵 200위 안에 들면 웹닷컴(2부) 투어 파이널 시리즈에 직행해 1부 투어 카드를 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랭킹 쿼터로 출전하는 메이저 대회와 월드시리즈챔피언십(WGC) 시리즈 같은 큰 대회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면 페덱스컵 포인트 200위 진입은 문제 없다는 계산이다.
세계랭킹 50위 내로 진입하는 게 선결 과제다. 50위 벽을 뚫으면 올해 4월7일에 열리는 마스터스도 출전할 수 있다. 김경태는 “지난해 후반기 분명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서 뒷심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올해 초반 성적을 내면 기회는 또 있다. 1월 말 싱가포르 오픈부터 좋은 성적을 내서 랭킹을 끌어 올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경태는 미국 투어 진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체력 보완이 필수라고 했다. 지난해 후반기 감기몸살 등으로 고생했던 김경태는 투어 데뷔 후 처음으로 체력 저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라운드를 하면서 ‘힘들다’라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라운드를 도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건 처음이다. 미국과 일본 투어 등을 병행해야 하는데 우선 체력 강화가 선결 과제”라고 고백했다.
올해로 김경태는 투어 10년 차가 됐다. 이제 일본 투어에서도 중고참이다. 최근 김경태는 신예들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경훈과 황중곤 등이 공식 우승 인터뷰에서 김경태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경태는 “원래 후배를 이끌기보다는 선배를 따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후배들이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고민으로 슬럼프를 겪고 있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래서 경험에서 비롯된 얘기를 해줬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어느덧 투어 생활 10년째에 접어 들었고, 세계 투어를 돌며 여유가 생긴 김경태는 후배들의 투어 적응도 돕고 있다.
지난해 6월 타일랜드 오픈에서 2년 9개월 만에 침묵을 깨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김경태는 5승을 수확하며 일본 투어 통산 10승을 기록했다. 그는 “우승 기회가 왔을 때 모두 잡았던 시즌이었다. 또 투어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고, 아홉 수 없이 10승을 채웠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고 2015년을 되돌아봤다.
김경태는 동료들이 꼽는 멘털 강자 중 한 명이다. 잘한 것도 못한 것도 빨리 잊는다. 김경태는 “매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잘 했던 것도 빨리 잊어버리려 하는 유형이다. 그래서 2015년에 거둔 성과에 따른 자신감만 갖고 새롭게 출발하려 한다”며 “앞으로 10년간 전성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초심으로 다시 돌아간 김경태에게 2016년도 새로운 출발점이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