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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야드 날리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장타왕 마르틴 김

12.08 07:48

'아르헨티나산 헐크' 마르틴 김은 폭발적인 파워를 앞세워 2015년 KPGA 코리안투어의 새로운 장타왕이 됐다. [고성진 사진작가]

축구와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한 소년은 승부욕이 무척 강했다.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했기에 팀 스포츠인 축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다 오로지 자신의 기량으로만 승부를 겨루는 골프를 접하게 됐다. 골프의 매력에 빠진 소년은 축구 선수의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어릴 적부터 피지컬 트레이닝에 집중했던 소년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멀리 드라이버를 때리는 선수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프로 골퍼의 꿈을 펼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으로 건너왔다.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마르틴 김은 이제 장기인 ‘대포’를 앞세워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무시무시한 파워 501야드 장타

2015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가 모두 끝난 뒤 새로운 장타왕으로 등극한 마르틴 김을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서 만났다. 마르틴 김은 올 시즌 294.54야드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를 기록해 내로라하는 국내 장타자 김태훈, 김대현, 김봉섭을 모두 따돌리고 장타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골프를 하면서 획득한 가장 큰 타이틀이었다. 루키 첫 해에 장타왕에 오른 그는 “정말 영광이다. 성적은 좋지 않지만 멀리 보냈다는 건 칭찬 받을 만하다”며 활짝 웃었다.

일찍 찾아온 추위 탓에 제법 쌀쌀했지만 반발 티셔츠를 입은 마르틴 김은 쩍 벌어진 어깨와 가슴 근육을 자신있게 드러냈다.

‘아르헨티나산 헐크’라는 별명답게 장타에 관한 일화도 많았다. 501야드 드라이브 샷을 때린 ‘대형사고’도 있었다. 그는 “한 달 전 피지에서 열린 원아시아 대회(피지 인터내셔널)에서 생애 가장 긴 드라이브 샷을 날렸다. 파5 홀이었는데 비거리가 501야드나 나왔다”며 “뒷바람이었는데 그렇게 멀리 날아갈지 상상도 못했다. 처음에는 볼을 잃어버린 줄 알았다. 티샷이 떨어지는 250야드 지점이 내리막이고 다시 오르막이 나오는데 홀이었다.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내리막에 맞고 튀어 올라 오르막을 넘고 다시 내려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무시무시한 파워로 501야드를 날린 마르틴 김은 80야드 남은 거리에서 세컨드 샷을 했다. 하지만 골프는 장타가 전부는 아니다. 스코어를 잘 내야 한다. 마르틴 김은 “그린에 올렸는데 3퍼트를 해서 파에 그쳤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올 시즌 마르틴 김의 골프가 대체로 그러했다. 페어웨이에 잘 보내고 그린에도 잘 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퍼트가 좋지 않아 스코어를 잘 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상금순위 83위에 그쳐 다시 코리안투어 퀄리파잉(Q) 스쿨을 봐야하는 처지로 몰렸다.

장타 이벤트 대회에서도 마르틴 김은 발군의 비거리를 뽐냈다. 올해 바이네르 오픈 때 열린 이벤트 장타 대회에서 마르틴 김은 346야드를 날려 1위에 올랐다. 장타왕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배 김봉섭과 김대현은 각 327야드, 326야드를 기록했다. 마르틴 김보다 대략 20야드가 짧았다. 그는 “보통 300야드는 보내는 것 같다. 마음먹고 때리면 350야드 아상도 보낼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장타의 비결, 복근과 등 근육

빼어난 장타 덕분에 마르틴 김은 장타 비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또 일반인들이 장타 레슨을 많이 부탁해온다고 한다. 마르틴 김은 “복근과 등 근육이 장타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쩍 벌어진 어깨와 초코릿 복근 덕분에 장타가 나오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는 “어깨 주위에 발달한 근육은 클럽을 빨리 돌릴 수 있게 한다. 복근은 동력이 되는 허리 회전과 축을 빠르고 탄력적으로 움직이는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마르틴 김은 헤드 스피드가 120마일이 넘는다. 장타는 이 같은 빠른 헤드 스피드에서 비롯된다. 마르틴 김도 장타의 요인 중 헤드 스피드를 1순위를 꼽았다. 어릴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던 게 헤드 스피드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13살 때부터 헬스를 꾸준히 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철봉을 집에 설치했다. 가장 많이 할 때는 한 번에 턱걸이 35개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습관이 15년 동안 이어져 지금도 일주일에 4번 이상은 체력 단련에 힘을 기울인다. 그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헬스를 안 하면 갑자기 몸이 약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너무 싫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놓을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근육과 몸집이 줄어들면 더 이상 ‘헐크’가 아닌 것이다.

‘헐크’답게 샤프트도 고강도를 사용한다. 마르틴 김은 국내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TX 샤프트를 쓴다. 올해 사용한 드라이버 샤프트도 호주에서 가서 맞춤 제작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샤프트 강도 중 가장 강한 게 X(extra stiff)다. 하지만 강도 X로는 마르틴 김의 파워와 헤드 스피드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X 샤프트도 써봤는데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TX와 X 샤프트를 두 손으로 당겨보면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헤드 스피드가 120마일이 넘는다면 TX 샤프트를 써도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국내 선수 중에는 TX 샤프트를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핑골프의 우원희 테크팀 부장은 “아직 국내에서 TX 샤프트를 쓰는 선수를 본 적은 없다. 헤드 스피드가 125마일에 달하는 버바 왓슨의 경우도 X 샤프트를 사용한다. 선수의 선호도와 느낌에 따라서 샤프트 선택은 달라진다”고 진단했다. TX 샤프트 강도까지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파워가 뛰어나다는 의미다.

마르틴 김은 힘의 원천이 고기에 있다고도 했다. 그는 “따로 스태미나 음식을 먹는 건 없다. 다만 매일 고기를 먹는다”며 “아르헨티나는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싸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소고기를 즐겨 먹었다. 지금도 고기만 먹으면 힘이 솟고 행복하다”고 미소를 보였다. 마르틴 김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 타운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리는 한국 음식도 없다. 김치로 요리한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다.

#복싱과 축구 그리고 골프 국가대표

마르틴 김의 아버지 김칠성씨는 복싱 선수였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출신으로 올림픽 출전까지 꿈꿨던 재능 있는 아마추어 복서라고 한다. 마르틴 김은 “복싱을 잘 했다고 들었고, 올림픽 출전까지 목전에 뒀는데 올림픽이 취소되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마르틴 김의 아버지 김씨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출전을 노렸다. 하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문제 삼은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서방 국가 65개국이 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꿈이 좌절됐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마르틴 김도 운동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복싱 훈련법도 배워 체계적으로 체력 단련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 김씨는 아들이 복싱을 하는 건 원치 않았다. 지기 싫어했던 마르틴 김은 동네에서 힘 꽤나 쓴다는 친구들과 치고 박고 싸우며 크고 작은 말썽을 일으켰다. 그래서 김씨는 아들이 복싱을 하지 못하게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종목이다. 어린 아이들은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등 자국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스타를 보며 꿈을 키운다. 마르틴 김도 13살 이전까지는 축구 선수를 꿈꿨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선 축구를 못하면 왕따가 된다. 축구도 힘으로 했다. 패스를 안 하고 혼자서 하는 축구를 했다. 잘하면 패스를 안 해도 상관이 없었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학교에서 클럽축구를 했던 마르틴 김은 팀 전력이 약해서 다른 팀에게 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13살 방학 때 친구들을 따라 갔던 골프연습장에서 마르틴 김의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그는 “지는 것를 진짜 싫어했다. 그래서 팀 종목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골프를 접했다. 골프는 축구와 달리 순전히 자신의 실력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 매력으로 다가왔다”며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고 공부도 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입문 배경을 밝혔다.

마르틴 김은 골프가 맘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클럽을 부러뜨릴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다. 아들의 승부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는 아들을 더욱 자극했다. ‘아마추어 1등이 안 되면 프로 전향은 없다’고 선언한 것. 지기 싫었던 마르틴 김은 하루 종일 골프에 매달리며 혹독한 훈련을 했고, 3년 만에 여러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페루, 우루과이의 아마추어 챔피언십 대회도 섭렵했고, 그는 남미 최고 아마추어 중 한 명이 됐다.

골프장이 넓고 긴 아르헨티나 코스에서 장타는 필수이자 프로 전향의 조건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장타 순으로 유망주의 순위가 가려질 정도다. 마르틴 김이 피지컬 트레이닝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부터 거리게 적게 나가는 편이 아니었다. 체격이 점점 커지자 거리도 따라서 늘어났다. 거리는 프로 전향의 필수 조건 중 하나”라고 했다. 1m75cm로 큰 체격이 아닌 마르틴 김은 어릴 적부터 몸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1m90cm가 넘는 장신들 못지않은 폭발적인 장타력을 가지게 됐다.



#코리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

마르틴 김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겉보기에는 강렬해 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만나면 움푹 팬 보조개가 1분에 한 번 보일 정도로 자주 웃는 순진한 청년이다. 웃으면 인상도 서글서글해진다. 하지만 드라이버만 잡으면 얼굴이 달라진다. 티박스에서 타깃을 겨냥하는 눈빛은 한 마리의 야수처럼 날카롭다.

2005년부터 8년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지냈던 것도 동물적인 본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2년 터키에서 열린 아마추어 월드 골프컵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참가한 마르틴 김은 한국행을 결정했다.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코치진의 초청으로 함께 훈련을 했었다. 또 코치진이 한국행을 권유하면서 결심이 굳어졌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정말 훈련을 열심히 하고 정신력이 강하다고 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또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했다”고 한국행의 이유를 밝혔다. 아르헨티나도 자국 투어가 있지만 미니 투어 수준이라 프로로 먹고 살기 힘든 환경이다. 결국 마르틴 김은 ‘큰 물’에서 프로 첫 발을 내디뎠다.

지산 아카데미에서 훈련한 마르틴 김은 2014년 말 코리안투어 Q스쿨을 23위로 통과하면서 1부 투어 시드를 얻었다. 2015 시즌 개막전인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1라운드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관심을 모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데다 폭발적인 장타를 날려 취재진의 눈길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마르틴 김은 좀처럼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휴식기인 8월에 헬스장에서 입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그는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실금이 가면서 2개월간 훈련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반기에 큰 대회들이 있어서 통증을 안고 출전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부상 악재가 겹쳤던 마르틴 김은 결국이 시드 유지에 실패했다. 고작 2180만원을 벌어들여 상금랭킹 83위에 머물렀다. 그는 “올 시즌 50점 밖에 줄 수 없다. 장타왕이 됐다고 해도 성적이 형편없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마르틴 김은 또 다시 ‘지옥의 관문’이라 불리는 Q스쿨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렇다고 자신감을 잃진 않았다. 그는 “골프는 언제 잘 될지 모른다. 제 자신을 여전히 믿고 치고 있다. 볼 스트라이킹이 괜찮다. 방향도 좋다”며 “샷이 정말 좋아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쇼트 게임을 보완하고 퍼트만 잘 하면 된다”라고 자신 있기 얘기했다. 장타왕을 차지한 마르틴 김은 그린 적중률이 70%로 투어 38위 수준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린 적중 시 퍼트 수가 1.84개로 좋지 않았다. 80위 밖이었다. 1위 손준업이 1.74개였는데 0.1개 정도 차이가 났다. 18홀 기준으로 따지면 2개 정도도 차다. 72홀 4라운드 기준으로 8타 가까이 떨어지는 셈이다.

자신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르틴 김은 “퍼트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점점 좋아질 거라 믿는다. 목표가 크니까 열심히 안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마르틴 김은 퍼트 기량만 향상된다면 코리안 투어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기량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마인드 컨트롤도 좀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그는 “퍼트가 들어가지 않을 때 내 자신이 제어가 안 된다. 그럴수록 차분해져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지고 몸도 굳어진다. 마인드 조절에도 힘쓰겠다”며 자신과 약속했다.

장타자답게 마르틴 김의 골프는 공격적이다. 코스를 공략할 때 공격적으로 하고 장타를 큰 이점으로 생각한다. 그는 “나보다 멀리 드라이브 샷을 때리는 선수와 라운드를 하면 조금은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골프는 스코어를 잘 내야하는 운동이다. 필드에 서면 장타 경쟁보다 스코어 경쟁이 최우선이다. 내 골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르틴 김은 한국으로 건너온 지 3년이 됐지만 수입이 크지 않아 아직까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그래서 우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러기 위해선 1부 투어 우승 등으로 ‘코리안 드림’을 먼저 이뤄야 한다. 그 다음이 PGA 투어 진출이다. 미국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장타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영어에 능통해 ‘준비된 선수’라는 점이 긍정적이다.

2007년 US오픈, 2009년 마스터스 챔피언이자 ‘아르헨티나의 골프 영웅’ 앙헬 카브레라처럼 되는 게 그의 꿈이다. 아르헨티나의 신예 에밀리아노 그리요가 올 시즌 PGA 투어 개막전인 프라이스닷컴에서 첫 승을 신고하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분노하면 녹색 괴물으로 변신해 무시무시한 괴력을 뽐내는 헐크처럼 녹색 필드를 지배하기 위한 아르헨티나산 헐크의 분노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다.

◆ 마르틴 김 profile
생년월일: 1988년 5월11일
국적: 아르헨티나
프로 전향: 2013년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 294.54야드(1위)
최장거리 드라이브 샷: 501야드
별명: 헐크
2015년 성적: 8개 출전 5번 컷 통과 상금순위 83위
주요 이력: 아르헨티나 국가대표(2005~2012년), KPGA 코리안투어 장타왕(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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