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으로 부활 '괴물' 김경태 "아들이 복덩이"
11.26 09:10

가족의 힘으로 더 단단해진 김경태가 ‘괴물’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김경태는 26일 개막한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카시오 월드오픈을 포함해 올 시즌 2개 대회를 남겨두고 있다. 상금 1억6300만 엔(약 15억3400만원)의 김경태와 9896만 엔(약 9억2500만원)으로 2위에 오른 미야자토 유사쿠(일본)와 격차가 크다. 미야자토가 남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해야 뒤집어질 수 있는 격차라 김경태의 생애 두 번째 일본무대 상금왕 가능성이 크다. 카시오 월드오픈에서 미야자토가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상금왕은 김경태의 차지가 된다.
김경태는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국 선수로는 일본 투어 최초로 한 시즌 5승을 달성했다. JGTO 통산 10승을 올린 것도 김경태가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다. 2010년 한국 남자 골퍼로 첫 일본 무대 상금왕을 차지했던 김경태는 두 번째 위업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년간 부진으로 세계랭킹이 352위까지 떨어졌던 김경태는 올해 부활 샷을 날리며 57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지난 6월 타일랜드 오픈에서 2년 9개월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을 시작으로 3개월간 4승을 수확했다. 11월 ABC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면서 5승을 채웠다. 세계랭킹순으로 3년 3개월 만에 다시 출전한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인 HSBC 챔피언스에서도 공동 27위를 차지했다. 특히 최종 라운드에서 홀인원을 적어 생애 처음으로 고급 승용차를 부상으로 받는 기쁨도 누렸다.
김경태는 올 시즌 부활 원동력으로 ‘가족의 힘’을 꼽았다. 지난 1월 결혼한 김경태는 4월에 아들 재현이 태어나면서 가장이 됐다. 가정을 꾸리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커졌다. 김경태는 “아들이 태어난 뒤 좋은 일만 생기고 있다. 복덩이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그는 “가장이 돼서 책임감이 달라졌고, 동시에 여유도 생겼다. 예전에는 경기 후에도 계속해서 실수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기를 보면 웃고 넘긴다. 가정이 있으니 여유가 생기는 등 장점이 많은 것 같다”라고 흐뭇해했다. 그러나 아직 아기가 어리고 일본과 한국에서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그는 "오랜 만에 아들을 보면 가끔 아빠를 못 알아 볼 때도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초심으로 돌아간 것도 달라진 점이다. 김경태는 지난 2년간 너무 경기가 안 풀리다보니 불안감 같은 게 생겼다. 매 대회 ‘예선 탈락’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지난 5년간 함께 했던 일본인 캐디를 교체했고, 운전도 스스로 하면서 골프장과 숙소를 오가는 등 변화를 택했다. 김경태는 “전문 캐디 없이 대회마다 여러 캐디를 고용해봤다. 다른 캐디들이 어떤지 지켜봤고,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김경태는 전문 캐디를 다시 고용할 예정이다.
행운도 따라줬다. 참가하지 않으려 했던 대회에서 덜컥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시즌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김경태는 지난 6월 타일랜드 오픈 참가 여부를 고민했다. 태국에서 열리는 데다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아 건너뛰려고 했는데 대회가 임박해서 마음을 바꿔서 출전한 게 김경태 골프의 전환점이 됐다. 김경태는 “첫 우승을 했던 타일랜드 오픈이 터닝포인트였다. 우승으로 확신이 없었던 스윙 등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됐고, 자신감도 올라갔다”라고 밝혔다.
오버스윙 경향이 있었던 김경태는 2년 전부터 스윙을 뜯어고쳤다. 예전에는 백스윙이 컸지만 몸이 빨리 돌아가지 않는 등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김경태는 “몸은 안 돌아가는데 손이 먼저 내려가다 보니 클럽 페이스가 열린 채 다운스윙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팔과 손, 클럽이 한 몸처럼 다운스윙이 되게 만들고 있다”며 “처음에는 바꾼 스윙에 대한 느낌, 임팩트에 대한 자신이 없었는데 우승을 한 뒤 믿음을 갖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김경태는 2007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 데뷔해 상금왕, 최저타수상, 대상, 신인상을 모두 휩쓸며 ‘괴물’의 등장을 알렸다. 2009년 일본 투어 상금왕을 하는 등 승승장구했고, 세계랭킹이 18위까지 올라가는 등 무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지금의 골프가 더 견고해졌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정말 감으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골프가 훨씬 단단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태는 지난 11월 HSBC 챔피언스 1, 2라운드에서 동반 라운드를 했던 러셀 녹스와 로스 피셔가 그 대회에서 각 우승과 3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그는 “녹스와 피셔와 함께 플레이 하면서 그린 주변 플레이가 부족하다고 많이 느꼈다. 쇼트 게임을 보완하는 게 숙제”라고 설명했다. 세계랭킹 57위까지 오른 김경태는 세계랭킹 50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50위 안에 들어야 마스터스를 포함해 WGC 시리즈 등 PGA 투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린다. 김경태가 시즌 마지막 2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충분히 50위 안에 진입할 수 있다.
PGA 투어 진출 꿈을 가지고 있는 그는 “2012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기회가 왔을 때는 반드시 잡겠다. 케빈 나 형에게 PGA 투어 시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다. 2015~2016 시즌 페덱스컵 랭킹 200위 안에 들면 웹닷컴 파이널 시리즈에 출전해 시드를 노리는 방법 등도 있다”라고 말했다.
올 시즌 스스로에게 100점을 매겼지만 더 많은 목표를 이뤄야 하는 2016년이 기다리고 있다. 김경태는 31위 안병훈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세계랭킹이 높다. 그래서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 가능성도 커졌다. 그는 “올해 분위기를 잘 끌고 나가서 내년에는 올림픽 출전과 PGA 투어 진출 꿈을 이루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