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형 "아들 장타력은 돌연변이 같아"
05.25 12:47

“병훈이 아닌 것 같았어요.”
안병훈의 아빠 안재형 탁구 남자국가대표팀 코치는 유러피언투어 BMW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를 본 뒤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감정 컨트롤이 서툰 아들이 더 이상 아니었다. 안병훈은 21언더파로 대회 최저타 기록을 경신하면서 1부 투어 첫 승을 이상적으로 장식했다. 안재형 코치는 “마치 우승 몇 차례 한 베테랑처럼 해서 놀랐다. 작년에 제가 골프백을 메고 옆에서 봤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며 “'저기서 퍼트를 뺄 텐데'라는 초조한 마음으로 봤는데 예상이 모두 빗나갈 정도로 훌륭한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유러피언투어의 루키 안병훈은 그동안 샷감은 좋았지만 퍼트가 따라주지 않아 우승 경쟁을 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평균 퍼트 수가 30개 정도였다. 하지만 BMW PGA 챔피언십 평균 퍼트 수는 28.75개에 불과했다. 특히 압박감이 심한 최종 라운드의 챔피언조에서 퍼트를 26개 밖에 하지 않는 등 놀라운 집중력을 뽐냈다. 핫산 트로피 2세 대회까지 퍼트 문제로 고심했던 그는 퍼트 훈련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 끝에 클러치 능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안병훈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한중 핑퐁커플인 안재형과 자오즈민의 유전자를 받아 손 감각이 빼어나다. 안재형 코치도 “큰 덩치 치곤 우리를 닮아서인지 손 감각은 좋은 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안병훈은 2009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최연소 깜짝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병훈도 자신의 감각을 믿어서인지 퍼트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각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퍼트 연습에 집중하며 정상급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연성의 절반도 부모를 닮았다. 탁구를 했던 부모처럼 상체 유연성이 좋아 큰 덩치에 비해 부드러운 스윙을 한다. 그러나 하체 유연성은 떨어진다. 안 코치는 “하체 유연성은 0점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도 달리기를 하면 제가 아마 이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안병훈은 하체가 튼실해 스윙 밸런스와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안병훈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그렇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나흘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안 코치는 “승부욕은 부모보다도 더 많아서 200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지나친 승부욕과 욕심 때문인지 안 되면 욱하는 성격이다. 올해 점점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도 안 될 때 자신을 어떻게 컨트롤하면서 버텨나가는지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코치는 현역 시절 타고난 운동신경에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엄마 자오즈민은 그렇지 못했다. 안 코치는 “와이프는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해 코칭스태프에게 많이 혼나는 편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아들 안병훈의 성격은 침착한 아빠보다는 엄마를 좀 더 많이 닮았다. 그렇지만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건 부자가 쏙 닮았다. 안병훈은 “1년에 샴페인 3잔 정도 마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병훈은 돌연변이 같은 장타력을 지녔다. 305야드에 가까운 평균 드라이브 샷을 펑펑 때려내는 안병훈이다. 하지만 안재형과 자오즈민은 파워가 좋은 선수들이 아니었다. 안 코치는 “제가 골프를 치지만 장타자는 아니다. 와이프도 마찬가지다. 병훈이의 장타는 어디서에 나오는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물음표를 던졌다.
하지만 186cm와 96kg의 건장한 체격 조건은 부모에게 물려받았다. 안재형도 1980~90년대 선수로는 드물게 180cm가 넘는 큰 신장으로 녹색 테이블을 지배했다. 자오즈민도 170cm대의 키와 좋은 신체 조건을 앞세워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안병훈은 부모에게 물려받아 완성된 훌륭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호쾌한 장타를 내뿜고 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