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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최경주 없는 오거스타

04.09 06:43

지난해 마스터스 도중 땀을 닦는 최경주. 그는 땀을 많이 흘린다. 짧은 퍼트가 살짝살짝 빗나간 후엔 그냥 땀이 아니라 눈물이 수건에 배어드는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GettyImages (Copyright ⓒ멀티비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 앞에 커다란 참나무가 있다. 마스터스가 열리기 이틀 전인 화요일 기자실에 대충 짐을 푼 후 그 나무 아래 그늘에서 최경주를 기다리곤 했다. 스키슬로프처럼 가파른 18번 홀 언덕을 올라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던 최경주는 한국 기자들을 보면 환한 웃음과 따뜻한 포옹으로 반겨주곤 했다.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서, 기자이든 다른 무슨 관계자이든, 혹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최경주는 그 나무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누구에게나 따뜻한 인사를 했다. 최경주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미래가 보이지도 않고 매우 외로운 경험을 해 봐서 낯선 곳에 온 사람들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기자도 2011년 마스터스에 처음 갔을 때 최경주의 환대를 받고 이 곳에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덧붙이면 최경주의 마스터스 환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메이저대회를 앞두고 희망과 기대 때문에 평소보다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연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오거스타의 이미지들이 있다. 융단 같은 페어웨이나 흐드러지게 핀 철쭉, 아멘코너에서 들려오는 천둥같은 환호, 최종라운드 16번 홀 서쪽 소나무 숲으로 넘어가는 태양빛 같은 것들이다. 기자에겐 그런 오거스타의 일반적인 인상 보다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참나무 아래에서 보던 최경주의 미소, 그의 사투리가 가장 강렬하다.

올해 마스터스에 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최경주가 참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도 한 몫 했다. 최경주는 6일 끝난 휴스턴 오픈에서 우승했다면 극적으로 참가자격을 딸 수 있었다. 그가 참가한다면 무리해서라도 가려 했다. 마감 임박을 앞두고 치솟는 비행기 티켓 가격을 항공권 할인 사이트를 통해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최경주가 참가할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했지만 안됐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 어느 기독교 방송사 건물 옥상 광고 간판 모델이 최경주에서 어느 날 축구 스타 이영표로 바뀌었다. 그 자리에는 항상 최경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오거스타에 최경주가 없다.

최경주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오거스타 아시아 최고 선수였다. 한국(계) 선수들의 등불이었고 큰형이었다. 오거스타의 일반 팬들에게도 'KJ'는 아주 인기 있는 선수다. 그는 한국 기자를 포옹으로 환대하듯 일반 갤러리의 인사에 성심성의껏 손을 흔들어준다.

외국 선수들도 그를 매우 좋아한다. 섹스스캔들 후 복귀전으로 관심이 집중된 타이거 우즈의 2010년 마스터스 동반 경기자가 최경주였다. 조직위에서 최경주를 이런 저런 사정들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봤기 때문이다.

오거스타에서 최경주의 하이라이트라면 2004년 마지막 라운드 11번 홀에서 샷이글을 하면서 3위를 하는 장면일 것이다.

기자가 직접 본 최경주의 오거스타는 2011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때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태양은 뜨거웠다. 이상 고온으로 오거스타의 꽃이 완전히 져버렸고 날은 바짝 말라 갤러리의 걸음마다 비릿한 풀냄새와 함께 흙먼지가 날릴 때였다.

최경주는 더위를 많이 탄다. 땀을 많이 흘린다. 그의 캐디가 클럽을 닦는데 쓰는 커다란 수건이 흠뻑 젖을 만큼 많은 땀을 흘렸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를 공동 2위로 출발했다. 샬 슈워첼과 함께 경기했다. 첫 홀에서 슈워첼의 약 20m 칩샷이 홀에 들어갔다. 최경주는 버디 퍼트를 놓쳤다. 오거스타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때 뿐 아니라 짧은 퍼트가 살짝살짝 빗나갈 때도 오랜 캐디 앤디 프로저는 묵묵히 보스에게 수건을 건네야 했다. 그럴 땐 그냥 땀이 아니라 눈물이 수건에 배어드는 것 같았다.

동반자 슈워첼의 운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가슴은 더 타들어 갔을 것이다. 최경주는 그 숨막히는 더위를 뚫고 16번 홀까지 선두권에 머물렀지만 마지막에는 힘이 좀 달린 듯도 했다. 공동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린 재킷은 결국 슈워첼이 입었다.

오거스타는 큰 도시가 아니지만 의외로 한국 교포가 많이 산다. 근처 군부대인 포트 고든의 영향이라고 교민들은 설명한다. 한국음식점이 여러 개 있다. 최경주가 항상 가는 허름한 한식당 황금정에서 함께 저녁을 함께 먹었다. 삼겹살과 총각김치를 안주로 최경주는 맥주를 몇 잔 마셨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최경주는 장난을 치는 세 아이를 다독이면서 “아직 내가 메이저 우승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최선을 다해서 쳤고 결과에도 만족하는데 젊은 선수들이 너무나 잘 치더라”고 했다.

그가 잠시 침묵할 때 다시 한 번 좋은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이번에도 행운은 자신의 편이 되지 않았다는, 혹시 메이저대회 우승 없이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갈지도 모른다는 근심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자신보다 먼저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양용은에 대한 부러움도 있는 듯 했다. 땀방울은 계속 흘러 내렸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걸쭉한 호남 사투리로 “언젠가는 찬스가 오겠지요”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 것이 최경주의 모습이다. 2008년 겨울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안 투어 싱가포르 오픈에서 그를 만났을 때다. 당시 최경주는 스윙 교정 중이었다.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으면서도 적지 않은 나이에 스윙을 교정하고 감량을 결정한 자세가 놀라웠다. 그러나 스윙을 바꾸는 동안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우리 골프계에선 그의 스윙 교정 진도가 화두였다. 그 해 가을 최경주는 "60% 정도 됐다"고 했었다. 기자는 3개월이 더 지났으니 80% 정도가 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기자에겐 수치가 중요하다. 내심 100%까지 도달했다고 하면 더 좋은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도 낸 것 같다.

몇 %인지를 묻는 나에게 그는 웃으며 되물었다. “성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몇 %쯤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몇 %라고 말 할 수 없었다. 50%는 되는 것 같지만 90%는 안 되고 그 중간 어디라고 찍기도 어려웠다. 만약 100%라고 하더라도 세상 모든 일에는 그 위가 있는 법이다.

최경주는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잘 될 때 자만하지 않고, 잘 안 될 때 좌절하지 않으면 노력은 그 값을 다 하지 않을까요"라면서 "숫자로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요”라고 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골프라는 스포츠가 주는 인생의 은유에 대해 생각한 계기도 됐다. 몇 해 전 『골프는 인생이다』라는 책을 냈는데 그 때 최경주 선수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

2011년 제 5의 메이저대회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최경주가 오랜 캐디 프로저를 끌어 안고 눈물을 글썽일 때 오거스타에서의 그 젖은 수건이 연상됐다. 최경주는 플레이어스 우승으로 메이저대회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털어냈을 테지만 진짜 메이저대회는 아니어서 가슴 한켠에는 채워지지 못한 꿈과 한이 남아 있을 것이다.

2004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 챔피언스 디너로 청국장을 끓이겠다"고 하던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최경주는 9일 아주경제 김경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반드시 참가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그가 내년에 마스터스에 참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운과 시간이 그의 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더라도, 메이저대회 우승 숫자와 관계없이, 최경주는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흠뻑 젖은 그의 수건처럼 세상에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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