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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마스터스의 좌편향

04.08 06:16

오거스타 내셔널 아멘코너의 마지막인 13번 홀. 이글도 더블보기도 자주 나오는 이 승부의 홀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하다.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2번 홀 왼쪽 숲을 예전 선수들은 ‘오거스타 여행사’라고 불렀다. 잡목이 우거진 이 곳에 들어가면 더블 보기 같은 대형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많고, 그래서 컷 탈락할 것이고, 여행사에 전화해서 비행기표를 바꾸고 호텔 일정을 줄여야 한다고 해서다. 마스터스 우승의 꿈이 이 곳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선수들은 종종 이 오거스타 여행사로 공을 쳐 낭패를 봤다. 2번 홀이 왼쪽으로 휘어지는 파 5홀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왼쪽으로 치고 싶은 위험한 유혹이 들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잘 맞아 300야드를 지나가면 가파른 내리막이기 때문에 거리에서도 엄청나게 이득을 본다. 2온을 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삐끗해서 ‘여행사’에 가면 그린 재킷의 꿈이 날아갈 수 있다.

왼손잡이 선수라면 그럴 가능성은 확 줄어든다. 왼손잡이 선수들은 공을 왼쪽으로 휘어 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페이드샷을 치면 된다. 반면 오른손 잡이는 왼쪽으로 돌려 치려면 드로 샷을 쳐야 하는데 컨트롤이 잘 안 된다.

공이 얼마나 휘어질지, 런이 얼마나 생길지 예상하기 어렵다. 말을 아주 잘 하는 원로 골퍼 리 트레비노는 "페이드와는 얘기해 볼 수 있는데(말을 듣지만) 드로와는 대화가 안 된다"고 했다. 오거스타 여행사까지 갈지 중간에 서줄지 잘 모른다는 얘기다.

2번 홀 뿐 아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은 좌편향이다. 매우 보수적인 클럽 회원들의 성향과 대조된다.

18개 홀 중 9개가 왼쪽으로 휘었다. 오른쪽으로 휜 홀은 3개다. 파 4와 5홀 14개 중 좌파 9: 중도 2: 우파 3이다. 9개 왼쪽 도그레그 홀 중 각도가 날카롭게 꺾인 홀은 2, 5, 9, 10, 13번 홀 등 5개 홀이다. 오른손 선수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홀은 18번홀 정도다.

그래서 메이저 최다승 기록을 가진 잭 니클라우스는 현역 시절 1년에 11개월은 페이드샷을 치다가 마스터스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는 드로샷을 연습했다. 얼마나 왼쪽으로 잘 돌려 치는 지가 그린재킷을 입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니클라우스의 현역 시절 이렇다 할 왼손 골퍼가 없어 왼손의 이점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명백하다. 특히 2002년과 2006년 특히 오른손잡이인 타이거를 겨냥해 전장을 늘린 후 좌파가 더 유리해졌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2번 마스터스에서 왼손잡이가 6차례 우승했다. 필 미켈슨이 3회, 버바 왓슨이 2회, 마이크 위어가 한 번이다. 비율 50%다. 정상급 골프 선수 중 왼손잡이는 높게 봐도 5% 미만이다.

이 세 선수는 마스터스를 제외한 다른 메이저 우승이 2회(필 미켈슨 디 오픈, PGA 챔피언십 각 1회)다. 대표적인 현역 왼손잡이 골퍼 세 명의 메이저 8승 중 75%가 마스터스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반대로 역대 남자 메이저대회에서 왼손 골퍼의 우승은 총 9회인데 그 중 3분의 2인 6번이 2003년 이후 마스터스다.

오거스타 9개의 좌파 홀 중 가장 왼손이 유리한 홀은 아멘코너의 마지막인 13번 홀이 꼽힌다. 이글과 버디도 많이 나오고 더블보기 같은 대형사고도 많이 나와 승부가 확 갈리는 홀이다. 파 5인 이 홀 페어웨이 왼쪽엔 개울이 흐른다. 그 유명한 래의 개울이다.

페어웨이는 왼쪽, 그러니까 개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2온을 노리고 드로샷을 친 많은 오른손잡이 선수들의 공과 꿈이 경사를 타고 굴러 이 곳에 빠졌다. 왼손잡이 버바 왓슨은 이 곳에서 별 부담 없이 시원하게 티샷을 날린다. 지난해엔 웨지로 2번째 샷을 하기도 했다.

오거스타에서는 파 4는 지키고 파 5에서 스코어를 줄여야 한다. 파 5홀 4개 중 3개 홀이 왼손잡이에 유리하다. 왼손잡이 왓슨은 지난해 파 5홀 스코어가 8언더파였다. 그의 우승스코어도 8언더파였다.

아멘코너의 시작으로 가장 어려운 홀로 꼽히는 11번 홀(파 4)은 오른쪽으로 휘었다. 그러나 왼손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티샷에서는 오른손잡이가 조금 좋은데 두 번째 샷을 할 때 왼쪽으로 잘 돌려 치는 선수가 확실히 좋다. 이 홀은 505야드로 길고 그린 앞, 옆, 뒤에 물이 있다.

그린을 향해 어프로치로 롱아이언을 쳐야 하는데 똑바로 치기는 부담스럽다. 컴퓨터 같은 스윙으로 유명한 오른손 프로골퍼 벤 호건은 “이 홀에서 내 두 번째 샷이 그린에 올라갔다면 미스샷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린 오른쪽 페어웨이에 갖다놓고 칩샷으로 파를 노리는 게 나의 전략”이라고 했다.

요즘 선수들은 호건보다 샷 거리가 길기 때문에 그린을 노리는 선수가 꽤 있다. 오른손잡이의 드로샷은 물에 빠지기 쉽다. 왼손잡이는 컨트롤이 쉬운 페이드샷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에 그린 적중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골프장이 왼손 골퍼를 배려하기 위해 여러 홀을 왼쪽으로 구부려 놓고 그린을 왼쪽 숲 뒤에 숨겨 놓은 것은 아니다. 코스 설계자인 알리스터 맥캔지와 창립자 보비 존스는 코스를 쉽게 공략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타깃으로 삼은 대상이 오른손잡이 골퍼였을 뿐이다.

골프에서는 오른손 선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왼손잡이는 마음에 드는 장비를 구하기도 어렵고, 연습장 이용도 쉽지 않다. 일종의 소수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소수자들이 왼쪽으로 휘어지는 홀이라는 난관을 극복하는데 유리했다.

야구는 왼손타석이 오른손 타석보다 1루에 가깝다. 왼손 투수의 장점도 많다. 인구 대비 훨씬 높은 비중의 왼손, 혹은 우투좌타 선수들이 최고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골프에서는 적어도 오거스타에서 왼손이 유리하다. 더 많은 왼손 골프 스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세계랭킹 1위를 역임했으나 메이저에서 우승을 못한 루크 도널드는 지난해 왓슨이 또 그린재킷을 입자 트위터에 "왼손 클럽을 사야겠다"라고 부러움 섞인 농담을 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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