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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최나연과 2G폰

02.07 14:28

최나연

최근 2년2개월만에 우승한 최나연은 2G 핸드폰으로 바꾸려고 고민한다고 했다. 지난해 단 두 번 컷탈락했을 뿐인데 슬럼프라는 과장된 보도가 나왔고 그에 상처를 받아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뉴스를 보게 하기 위해 부풀린 보도를 해서 선수를 힘들게 한다고 여긴다.

요즘 골프 선수들이 미디어에 불만이 많다. 타이거 우즈는 최근 ‘스키장에서 카메라TV와 부딪혀 이가 빠졌다’, ‘그런 일 없다’라는 증언이 엇갈려 일부 미디어가 ‘이빨게이트’라고 쓰기도 했는데 기자들에게 “당신들은 다 그렇다(사실과 달리 없는 것을 만든다). 미디어는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했다.

하와이에서 납치, 폭행,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한 프로골퍼 로버트 앨런비는 “미디어는 피해자인 나를 가해자로 만들었고 거기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아니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미디어가 종이-인터넷-모바일로 옮겨지면서 더 자극적인 보도가 늘어났다. 댓글도 분노가 서린 섬뜩한 표현들이 있다.

최나연은 미디어에 말을 잘 하는 선수다. 이런 미디어 프렌들리 선수도 불만이 많다면 뉴스 종사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책 ‘뉴스의 시대’를 읽었다. 책에 스포츠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다. 대신 셀러브러티 섹션에 스포츠 선수에 대한 얘기를 한다. 저자는 “스포츠 스타를 포함한 셀러브러티 섹션을 흥미진진하게 만들되 풍부한 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고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반드시 소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버디나 보기가 아니라 선수 내면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보통은 또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태도나 업적을 가진 사람들을 골라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천부적인 재능으로 저열한 정신을 숨기는 스타를 솎아낼 필요도 있고, 공정한 게임의 룰을 어기는 선수도 미디어는 밝혀야 한다.

랜스 암스트롱의 도핑 사건은 조직적인 은폐와 살해위협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헌신한 스포츠 저널리스트에 의해 밝혀졌다. 편파 심판에 아들이 억울하게 당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태권도 선수의 아버지 사건을 볼 때 담당 기자들의 책임은 없을까 반성했다.

사족이지만 스포츠 기자로서 박태환이 금지약물을 몰랐다고 하는 건 학생이 1교시 수업 시작시간을 몰랐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이다. 무죄추정 원칙도 있고, 실제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매우 희박하다고 본다. 병원과 마찰이 생긴 건 수업을 안 들어가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넘어갈 거라고 당신들이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투정하는 것으로 들린다.

스포츠 기자가 비리를 파헤치는 사회부 기자는 아니지만 응원단도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프랑스 미디어는 자국 축구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1998년 대회에서 예술 축구라는 찬사를 받으며 우승했고, 2002년에도 우승후보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1무2패로 예선 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 미디어는 마치 자국 축구팀이 떨어지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잘못된 부분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좋은 준우승이었다.

건전한 긴장관계가 일방적인 박수보다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저널리즘 교과서에는 쓰여 있다.

그래서 납치, 폭행,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말이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앨런비를 감싼 미디어의 친구는 진짜 기자가 아닌 것 같다. 그런 기자가 단 한 명 밖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타이거 우즈의 말도 개운치 않다. 우즈는 카메라에 부딪혀 이가 빠진 것이 맞다고 했다. 그의 이가 빠진 원인은 사생활이어서 캘 필요는 없지만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의 말대로 피가 많이 날 정도로 부딪혔다면 가해 카메라맨이 몰랐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즈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미디어는 다 그러지 않느냐”라고 말한 부분은 씁쓸하다.

우즈는 데뷔시 아널드 파머에게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 때문에 너무 힘들다. 평범한 스물한 살처럼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파머는 “통장에 있는 5000만 달러를 돌려주면 된다. 평범한 청년은 통장에 그만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 우즈는 돌려주지 않았다.

스타가 되어 거액이 든 통장을 받으면 미디어의 관심 등에 노출되는 것에도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가 될수록 더 큰 현미경이 따라다닌다. 미디어 종사자 모두가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적이지는 않다. 바쁜 사람들의 짧은 이동 시간의 틈을 노리는 모바일 시대여서 일부는 선정적이고 일부는 왜곡된 현미경을 가지고 다닌다.

건전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때론 스마트폰을 끄고 사색을 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와 선수 양쪽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최나연이 선정적 보도와 악의적인 댓글에 버틸 힘을 갖기를 바란다.

그래도 소통은 필요하다. 2G폰보다 스마트폰이 소통하는데 훨씬 편리하기 때문에 최나연이 2G폰으로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최나연은 통신회사인 SK텔레콤의 후원을 받고 있지 않은가. 최나연 아직은 핸드폰을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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