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세컨드샷-입스, 말더듬증 비슷한 뇌질환
02.07 13:54

1999년 뉴욕 양키스의 2루수 척 노블락은 1루 송구가 나빴다. 1루 뒤에 있던 TV카메라맨 머리 위로 던졌다. 그 이후로 그는 1루에 송구를 못했다. 그는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다. 1990년대 뛰어난 포수였던 뉴욕 메츠의 매키 새서도 어느날 갑자기 투수에게 공을 던지지 못했다.
타이거 우즈가 칩샷 입스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5년 마스터스에서 90도 꺾어져 홀로 접근해 잠시 멈췄다가 컵에 떨어지는 신기의 칩샷 등을 보여주던 쇼트게임의 예술가 우즈가 연거푸 칩샷 뒤땅을 치고 있다. 허리까지 아파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국립국어원의 신어 사전에 의하면 ‘입스란 골프에서, 퍼트를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하는 증세. 호흡이 빨라지며 손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이른다’라고 되어 있다.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이 증상은 퍼트할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드라이버를 칠 때도 칩샷을 할 때도 입스가 나온다. 앞에 기술한 야구선수들처럼 다른 종목에서도 종종 있다. 갑자기 자유투를 못 던지는 농구선수가 있고, 서브를 넣지 못하는 테니스 선수가 있으며, 다트를 던지지 못하는 다트 선수가 있다. 크리켓, 당구 등 종목은 다양하다. 그래도 골프에서 가장 많다.
작가나 음악가들에게도 가끔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1965년 갑자기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쳤다. 오래 후 손이 회복됐지만 예전 같은 연주실력은 나오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타이거 우즈가 칩샷 입스로 고생하는 라운드를 묘사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캐디가 ‘죽음의 사신’으로 보였다고 썼다. 선수들에게는 입스가 저승사자가 될 수 있다. 1920년대의 명 골퍼 토미 아머는 “한 번 생기면 바로 끝장”이라고 했다. 아머 이외에도 해리 바든, 벤 호건, 샘 스니드, 톰 왓슨, 베른하르트 랑거, 이언 베이커 핀치, 데이비드 듀발 등이 입스를 겪었고 선수생활을 그만뒀거나 오랫동안 고생했다.
슈퍼스타 우즈의 입스는 골프계의 큰 악재다. 그래서 여러 명이 훈수를 두고 있다. 몇 분 만에 치료된다는 전문가도 있지만 대부분 비관적이다. 과거 그의 코치였던 행크 헤이니는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이니가 우즈와의 악연 때문에 악담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헤이니 본인이 오랜 동안 입스로 고생한 그 분야 전문가다. 책도 썼다. 헤이니는 우즈 캠프 내의 속사정을 안다. 우즈는 “괜찮다 스윙 교정 중 생긴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라 하고 있지만 우즈 캠프 내에서는 처절한 신음소리가 퍼지고 있단 걸 헤이니는 알고 있다. 입스는 우즈의 선수생활을 끝낼 수도 있다. 그 시기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다.
헤이니는 툴사 대학시절 컨퍼런스 올스타에 뽑힌 뛰어난 선수였다. 그러나 고교시절부터 생기기 시작한 드라이버 입스가 악화되면서 1985년부터 2002년까지 17년 동안 골프 라운드 수가 열 번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라운드에서 공 몇 박스를 다 잃어버리기도 했단다. 세계적인 골프 코치로 명성을 날린 그는 당연히 자신의 입스를 고치려 했다. 그러나 헤이니는 “열심히 고치려하면 할수록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입스는 매우 심리적이다. 불안과 걱정, 긴장 등이 입스를 증가시킨다. 얼마전까지는 100% 심리적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심리학만으로 풀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신경계통과 관계된 뇌의 질환이라는 해석이 요즘 대세다. 생리학적-생화학적 현상이라는데 아직 깊이 연구되지는 못했다.
단순 심리문제가 아니라 신경계 질환이라는 근거는 이렇다. 입스로 과녁을 향해서 활을 쏠 수 없게 된 양궁선수들이 다른 곳에는 잘도 쏜다. 원이 있는 과녁에 못 쏠 뿐이다. 위에 설명한 야구 선수 노블락은 좌익수로 옮겨서는 1루로든 홈으로든 공을 잘 던졌다. 2루수 자리에서는 못 던졌다. 만약 100% 긴장이나, 불안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면 왜 다른 곳에는 잘 쏘고 불스아이에는 쏘지 못할까.
부담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입스환자들은 증세를 보인다는 연구도 나왔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불안감이 입스 발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듯하다. 눈과 손, 뇌를 연결하는 신경 연결 회로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조니 밀러는 퍼트 입스에 대해 “내 머릿속의 와이어가 부식됐다”고 표현했다. 토미 아머는 “쇼트게임을 망가트리는 머리 속의 경련”이라고 했는데 아마 이런 말이 적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특히 뇌의 시각적 자극이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볼과 퍼터헤드라는 시각적 자극을 받으면 퍼트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과녁을 보면 활을 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노블락의 경우는 2루수 자리에서 1루를 바라봤을 때 보이는 덕아웃이나 TV카메라가 그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자극의 발단이 될 수 있다.
입스 음악가 중에는 테블릿 컴퓨터의 건반이나 오르간은 잘 치는데 진짜 피아노에선 연주를 못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피아노 건반이라는 시각적 자극에 몸이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눈에서 정보를 뇌로 보내는데 눈이 너무 빨리 움직이는 등의 장애로 인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더듬증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부분의 말더듬 환자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속삭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진짜 말을 할 때는 말을 못한다고 한다.
입스가 유독 골프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은 손과 긴 클럽, 작은 공 등 매우 예민한 정보가 뇌와 눈, 손을 오가면서 반응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골퍼의 25%가 이 병을 앓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본다. 입스는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하지 않는다.
입스를 고칠 수 있을까. 입스를 어느 정도 이겨낸 경우는 있다. 역시 시각을 이용했다. 조니 밀러는 퍼트 입스를 겪고 있던 76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는 볼이나 퍼터 헤드를 보면 퍼트를 할 수 없는 증상을 앓았다. 그래서 그는 퍼터 그립에 손톱만하게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공이나 헤드를 보지 않고 빨간 매니큐어만 보면서 퍼트를 했고 우승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메이저 2승의 마크 오메라도 퍼트 입스에 걸렸다. 그는 그립을 바꿨다. 네 손가락이 타깃 쪽을 가리키게 잡는 이른바 집게 그립을 썼다. 오메라는 퍼트를 할 때 공이 아니라 손가락 끝을 보고 스윙을 했다.
눈을 감고 퍼트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실제 입스 환자는 눈을 감고 퍼트를 해보라는 처방을 받는다. 눈을 떠서 몸이 돌처럼 굳은 상태로 퍼트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헤이니는 드라이버 입스를 거의 고쳤다. 공을 보지 않고 레슨을 받는 수강생의 얼굴을 보면서 스윙을 했을 때 공이 잘 나가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공을 보지 않아야 공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드라이버 스윙을 할 때 공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가 찾은 것은 모자 챙이다. 공을 잠깐 본 후 스윙 내내 모자 챙을 본다고 한다.
한국의 김대섭도 2007년 드라이버 입스로 은퇴까지도 고려했다. 그도 우연히 저승사자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중앙일보에 “재미 삼아 티를 꽂지 않고 드라이브 샷을 했는데 볼이 똑바로 날아갔다. 스탠스를 넓게 취한 뒤 하체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티를 낮게 꽂고 샷을 하니 볼이 잘 맞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대섭은 “그동안 거리를 내기 위해 하체를 많이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윙 리듬과 템포를 잃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도 어떤 시각적 자극(티펙)이 사라지자 입스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티를 안 꽂으면 당연히 티가 보이지 않고, 낮게 꽂아도 공에 가려 티가 보이지 않는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마크 오메라는 마스터스 2승이 아니라 디 오픈과 마스터스에서 한번씩 우승했기에 메이저 2승으로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