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세컨드샷-타이거 'you-know-who'와 조우
01.31 18:34

한 번 말하면 실제로 없던 것도 생긴다는 말이 있다. 해리 포터에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어둠의 마법 제왕인 볼드모트를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you-know-who'(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고 부른 것처럼 너무 무서워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말도 있다.
골프에도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다. 입스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최근 이 악령 같은 저주의 단어가 붙었다.
피닉스 오픈 2라운드에서 11오버파 82타를 치면서다. 그의 역대 최악의 스코어였다. 사실 1라운드 후부터 혹시 칩샷 입스 아닌가 하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우즈는 비교적 쉬운 코스에서 2오버파를 쳤는데 칩샷이 또 엉망이었다.
미국 골프 채널 수석 해설가 브랜들 챔블리는 “투어 프로가 저렇게 칩샷하는 것은 처음 본다. 대회에 참가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입스...”라는 속삭임들이 나왔다.
입스하면 드라이버와 퍼터를 주로 연상하지만 칩샷도 만만치 않다. 칩샷 공포 때문에 크로스 핸디드로 칩샷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한 손으로 칩샷을 하는 투어 프로 지망생도 있다. 오죽했으면 한 손으로 칩샷을 할까.
한국의 장타자인 김민수도 칩샷 입스로 고생을 했다. 그의 그린 적중률이 매우 높은데 그는 구석에 있는 핀을 보고 치다가 그린에 올리지 못해 칩샷을 해야 할 악몽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 그린 가운데만 보고 쳐서라고 한다.
그는 “칩샷 입스가 생긴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칩샷에 대한 공포를 지우지 못했다”고 했다. 장타에 아이언도 좋은 그가 칩샷 공포를 벗었다면 정상급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잠재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스크린 골프 대회에서 최고 실력을 보이는 스크린의 타이거 우즈로 남아 있다.
그만큼 칩샷 입스를 떨쳐 내기가 어렵다. 한 유명 교습가는 제자의 칩샷 입스를 고치지 못해 오른손잡이 골퍼에게 왼손용 웨지를 들려주고 칩샷을 하게한 후에야 이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 교습가는 “칩샷 입스는 기술 보다는 멘털이며 제자가 왼손으로 칩샷을 하다가 실패를 한 경험이 없어 왼손 칩샷이 통했다”고 설명했다.
우즈가 칩샷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열린 히로 월드 챔피언십에서다. 쉬운 칩샷을 뒤땅을 쳤다. 적어도 9번 나왔다. 우즈는 “칩샷은 스윙의 작은 버전이다. 코치를 바꾸면서 그 전에 하던 스윙과는 다른 스윙을 한다. 아직 확실히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더 연습을 해야 하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즈는 “코스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고도 했는데 타이거 우즈 말고는 누구도 뒤땅을 반복해서 치지 않았다.
우즈는 1월 30일 열린 피닉스 오픈에서도 이상했다. 야구장처럼 관중석으로 둘러 쌓인 유명한 16번 홀 연습라운드 중 그린사이드 벙커에서 관중석으로 공을 날렸다. 야유하는 관중에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는데 사실 우즈는 심각했다.
1라운드에서 칩샷을 해야 할 때 웨지가 아니라 7번 아이언을 꺼냈다. 아니면 그린 밖에서도 퍼터를 썼다. 공을 띄워야 했기 때문에 꼭 웨지를 써야할 때가 있었는데 뒤땅을 쳤다.
2라운드에서는 더 했다. 그의 다섯 번째 홀인 14번 홀에서 칩샷을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 15번 홀에서 벙커샷은 그린을 넘어가는 등 이른바 온탕냉탕 속에서 트리플 보기를 했다. 아마 웨지가 무서워서 친 것 같은 4번 아이언 칩샷은 그린까지 가지 못했다. 뒤땅을 치고 날로 치고 공은 짧고 너무 길어 완전한 아마추어 주말 골퍼의 쇼트게임이었다.
동반자인 조던 스피스는 “보기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기자의 생각도 똑같았다.
우즈는 “수천, 수천, 수천개의 웨지샷을 연습했다”고 말했다. 칩샷은 골프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즈 동료들은 그가 연습장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연습장에서 문제가 없던 샷들이 골프장에서 생긴다면 멘탈 문제다.
그걸 겪어 본 사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공을 쳐야 하는 우즈에게는 그린 주위에 가는게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선수 출신으로 해설가인 아론 오버홀저는 “그 병이 맞다”고 했다. 우즈의 친구인 노타 비게이도 “우려스럽다. 자신에게 아주 어렵고 고통스러운 질문을 해야 한다. 다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초 대회에서 문제가 생겼고 두 달 가까이 치료하지 못했다면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이번 대회는 쇼트게임이 매우 쉬운 대회이기도 했다. 우즈가 이번 대회만큼 뒤땅을 많이 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대회 출전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서희경은 “공이 안 맞을 때 대회장 나가는 건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이라고 했다. 우즈의 메이저 최다승 도전은 입스라는 단어와 함께 한 발 더 멀어졌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PGA 투어 최다승 기록도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예상보다 매우 빠른 은퇴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는 없다.
타이거 우즈는 볼드모트를 물리칠 수 있는 특별한 마법사 해리 포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는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kar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