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훈, 스팅어 샷 묘기에 "한 번 더" 외친 팬들
04.06 08:11

'명인열전'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16번 홀(파3). 박태기나무(Redbud)라는 이름 붙은 이 홀은 연습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환호가 쏟아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5일 마스터스 공식 연습일에도 선수들의 진기명기 샷을 보기 위해 수많은 갤러리가 몰려들었다. 이 홀에서는 낮은 탄도로 날아가다 높게 솟구치는 일명 ‘물수제비샷’ 또는 ‘스팅어(stinger) 샷’의 향연이 벌어진다.
1980대 중반 리 트레비노(미국)가 연습 라운드 때 팬서비스 차원에서 워터 해저드를 향해 스팅어 샷을 날린 이후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물수제비를 뜨듯 공을 수면 위를 통통 튀게 한 뒤 그린으로 올리는 일종의 묘기 샷이다. 비제이 싱(피지)은 2009년 연습 라운드에서 스팅어 샷으로 홀인원을 하기도 했다.
마스터스에 처음 초대 받은 왕정훈(22·SNRD)은 이날 “한 번 더”라는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받았다. 왕정훈은 물수제비뜨기로 공을 수면 위로 10번 정도 통통 튀긴 뒤 그린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왕정훈의 아버지 왕영조씨는 “연습 라운드인데도 다른 대회 최종 라운드처럼 많은 인파가 몰려 들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제81회 마스터스가 6일 밤 개막한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암표 가격이 벌써 9000달러(약 1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왕정훈은 김시우(22)·안병훈(26·이상 CJ대한통운)과 함께 마스터스에 출전한다. 지난해 유러피언투어에서 신인왕을 차지했던 왕정훈은 세계랭킹 47위로 한국선수 가운데 랭킹이 가장 높다.
왕정훈은 유러피언투어에서 통산 3승을 거뒀지만 마스터스는 올해가 처음이다. 그는 “10세 때 TV로 마스터스를 처음 봤다. 그 때부터 오거스타를 밟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거스타에서 연습라운드를 마친 왕정훈은 “그린이 정말 빠르다. 코스가 길고 까다로워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목표는 컷 통과지만 더 높은 곳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우승자가 그린재킷을 입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언젠가는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유리알 그린’으로 명성이 높다. 생소한 코스 세팅에 그린 스피드가 빠르고 포대 그린도 많기 때문에 처음 출전한 선수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베테랑 어니 엘스(남아공)도 지난해 이 대회 1번 홀에서 1m 남짓한 거리에서 ‘7퍼트 악몽’을 경험했을 정도다.
왕정훈은 지난 1월 유러피언투어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자신감을 끌어올린 왕정훈은 “샷감각이 좋기 때문에 올해 내심 3승 정도는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왕정훈은 어렸을 적부터 세계 각국을 돌며 골프를 계속해왔던 ‘골프 노마드’다. 탄탄한 하체를 자랑하는 왕정훈은 “어렸을 때부터 줄넘기를 하면서 체력 단련을 했다. 한 번에 1만400개 이상 줄넘기를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왕정훈은 6일 오후 11시23분(한국시간) 브랜던 그레이스(남아프리카공화국), 브룩스 켑카(미국)와 함께 1라운드 경기를 시작한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