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 남자골프', 브라질 아니고 단체전 있었다면?
07.12 14:41

지난해 디오픈 챔피언 잭 존슨(미국)은 12일 스코틀랜드 사우스 아이셔의 로열 트룬 골프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골프가 올림픽 종목에 포함돼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골프는 1년 내내 전 세계에서 열리는 종목이고 메이저 대회와 라이더컵 등 굵직한 대회들이 많기 때문에 ‘올림픽에 굳이 포함되지 않아도 되는 인기 종목’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에서다.
존슨은 골프를 축구와 농구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골프 선수들은 메이저 우승을 올림픽 금메달보다 중요시 생각한다. 축구와 농구에서도 올림픽 금메달보다 월드컵이나 NBA 우승컵을 더 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슨의 말처럼 이미 세계적으로 정착된 인기 종목에서는 다수가 올림픽보다는 돈과 명예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추세다.
골프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112년 만에 역사적 귀환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남자 골프의 열기는 차갑다. 세계랭킹 1~4위 제이슨 데이(호주), 더스틴 존슨, 조던 스피스(이상 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지카 바이러스 공포와 치안 불안 등의 이유로 모두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톱10 선수 중 6명이 올림픽에 나오지 않아 개막 전부터 김이 빠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일랜드는 골프 강국 중 하나다. 하지만 매킬로이, 셰인 로리(27위), 그레엄 맥도웰(74위)이 모두 올림픽을 포기하면서 파드리그 해링턴(148위)과 시머스 파워(290위)가 리우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올림픽 참가 선수 60명 중 해링턴과 시머스의 랭킹은 각 43위, 52위에 불과하다. 만약 매킬로이가 출전했다면 강력한 금메달 후보 종목이었겠지만 지금은 메달 후보권에서 멀어졌다.
국제골프연맹(IGF)에 따르면 리우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선수가 모두 18명으로 집계됐다. 여자 선수는 리 앤 페이스(남아공) 단 한 명만 기권했다. 세계랭킹 톱10 중 국가당 쿼터 제한에 걸린 10위 장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출전한다. IGF가 바랬던 대로 ‘별들의 전쟁’이 올림픽에서 펼쳐지게 된 셈이다.
지난 2009년 골프가 올림픽 종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전 남자 세계 톱랭커들은 올림픽 출전을 약속했다. 당시 세계랭킹은 지금과 큰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세계랭킹 1~4위가 모두 불참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지카 바이러스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브라질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열리고 개인전만이 아닌 단체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브라질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개최됐다면 세계랭킹 1~4위가 모두 불참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출전을 포기했다. 만약 2020년 올림픽 개최지인 일본 도쿄였다면 이들은 역사적인 골프의 귀환을 함께 했을지 모른다.
남녀 개인전만이 아닌 단체전이 포함됐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골프 관계자들은 “단체전의 경우 선수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식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림픽 출전을 가장 먼저 포기했던 애덤 스콧(호주)도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 등 흥미를 끌 만한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 2종목에 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단체전이 있었다면 선수들은 출전 여부를 더욱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개인전처럼 자신만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함께 호흡을 맞출 동료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팀 위주로 전략을 구상하고 호흡을 맞춰야 하기에 개인이 아닌 팀 또는 국가의 명예가 더 중시됐을 것이다. 단체전이 생기면 선수 구성뿐 아니라 승부도 흥미로워진다. 박세리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은 “사실 지금 같은 개인전이면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단체전이라면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 선수의 색깔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고 국가대항전의 묘미가 더욱 뚜렷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 골퍼들의 올림픽 불참은 비단 지카 바이러스와 치안 문제 탓은 아니다. 미국 언론은 ‘만약 마스터스가 브라질에서 열렸으면 세계 톱랭커들이 모두 출전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역사가 깊지 않은 올림픽 골프보다 메이저 대회에 더 초점을 맞추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김경태도 “올림픽 메달보다 메이저 우승이 우선 순위”라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골프는 올림픽 종목으로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후 존속 여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단체전 신설 여부도 IOC 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올림픽은 전 세계 36억 이상이 시청하는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다. 올림픽을 통해 골프가 일반 대중에게 더 사랑 받을 수 있는 기회인 건 분명하다. 피터 도슨 IGF 회장은 “올림픽만큼 골프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이벤트는 없을 것이다. 2020년 올림픽에는 올해 여자 골프처럼 남자 톱랭커들도 모두 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