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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섐보, '필드의 물리학자'냐 '미친 과학자'냐

04.07 18:28

브라이슨 디섐보는 보비 존스 이후 처음으로 똑 같은 길이의 샤프트를 장착한 아이언을 사용하는 선수로 주목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GettyImages (Copyright ⓒ멀티비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80회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괴짜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의 골프백에 팬들은 물론이고 동료 선수와 취재진의 시선이 쏠렸다. 5일 디섐보와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함께 돌았던 더스틴 존슨(미국)은 클럽을 빌려 스윙도 해보고 ‘샤프트 길이가 똑 같은 아이언’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디섐보는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은 물론이고 ‘전설’ 벤 호건과 보비 존스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건처럼 플랫캡 모자를 쓰고, 존스과 비슷한 클럽으로 경기를 한다. 클럽 제원이 똑 같은 게 아니라 존스처럼 똑 같은 길이의 아이언을 사용하는 게 유사하다. 1930년대 활약했던 존스 이후 동일한 길이의 아이언으로 필드를 누비는 건 디섐보가 처음이다. 그래서 현지 언론은 자신만의 클럽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는 디섐보를 ‘필드의 물리학자’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상식 파괴의 클럽을 들고 나온 디섐보를 ‘미친 과학자’라 비꼬는 매체도 있다.

디섐보의 3번 아이언부터 웨지까지 10개 아이언은 샤프트 길이 37.5인치, 헤드 무게 280g으로 동일하다. 로프트 각도만 다르다. 3번 아이언이 20도이고, 4번 24도, 5번 30도다. 9번 아이언이 로프트 46도로 웨지만큼 각도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6번 아이언의 샤프트 길이로 맞춰졌기 때문에 거리 조절을 위해 로프트 각도를 높인 것이다. 디섐보는 6번 아이언 이후 것들은 번호 대신 로프트 각으로 호칭한다. 가령 9번 아이언이 아닌 ‘46도 아이언’으로 부른다.

아이언 그립이 120g으로 퍼터 그립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도 특이하다. 손이 큰 버바 왓슨(미국)도 퍼터 그립처럼 두꺼운 아이언 그립을 사용한다. 그립을 포함한 클럽의 중량비를 뜻하는 스윙웨이트는 C8로 프로 선수 치곤 헤드 무게감이 가벼운 클럽을 쓴다. 그립이 무거울수록 헤드 무게감이 가벼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디섐보가 독특한 클럽을 쓰게 된 이유는 ‘동일하고 같은 속도로 스윙하기’ 위함이다. 클럽 길이와 무게가 같으면 동일한 자세로 일관성 있는 스윙을 할 수 있다는 게 디섐보의 생각이다. 누구나 디섐보처럼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셈 계산이 빠르고 물리학에 능한 디섐보라서 무모하게 보이는 도전을 현실로 만들었다. 미국에서 물리학으로 유명한 남부감리교대학(SMU)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디섐보는 스윙웨이트 등 클럽 피팅을 위한 수치들을 직접 계산하고 산출해 ‘괴짜 클럽’을 만드는데 활용했다고 한다. 디섐보는 “코치와 함께 연구했고, 그립과 클럽 헤드 밸런스를 맞추는데 2주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피팅 전문가들은 '똑 같은 샤프트 길이의 아이언이 일반 아이언처럼 거리 편차가 일정할까'는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디섐보의 클럽 사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보통 로프트가 거리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샤프트 길이는 거리에 20%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핑골프의 우원희 부장은 “로프트 외에 샤프트 강도, 스윙웨이트, 그립 무게 등을 조정하면 충분히 거리 편차가 일정하게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피팅 추세도 퍼포먼스 중심이다. 우원희 부장은 “클럽 제원에 의존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퍼포먼스 중심의 피팅이 주를 이룬다. 프로 선수의 경우 멘털적인 요소도 많이 가미된다. 선수가 클럽에 대해 믿고 신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팅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디섐보가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디섐보가 사용하는 에델 골프 클럽을 수입하는 이상헌 도담디엔에스 대표는 “예전에 비슷한 시도를 한 회사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머리가 좋은 디섐보라서 가능한 클럽인 것 같다. 스윙웨이트를 계산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고, 지난 겨울학기에 올 A학점을 받은 수재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디섐보와 같은 똑 같은 샤프트 길이 아이언에 대한 문의가 오고 있지만 상용화는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원희 부장은 “기본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디섐보 클럽은 오직 그에게 적용되는 하나뿐 인 아이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의 클럽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디섐보는 코스도 꼼꼼하게 잘 분석하는 듯하다. 디섐보는 2015년 미국대학스포츠(NCAA) 디비젼Ⅰ챔피언십과 US아마추어 챔피언십 모두 우승했다. 두 대회를 한 해에 우승한 건 잭 니클러스, 필 미켈슨, 타이거 우즈, 라이언 무어에 이어 다섯 번째 기록이다. 프로 대회에서도 경쟁력을 보였다. 그는 지난 달 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매킬로이와 함께 6언더파 공동 27위를 차지했다.

독특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스타성을 인정받고 있는 디섐보는 최근 코브라와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지금껏 사용해왔던 에델 골프의 아이언으로 마스터스를 치를 예정이다. 또 그는 4월 PGA 투어 헤리티지 대회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를 계획도 있다. 연습 라운드에서 함께 플레리를 했던 필 미켈슨은 “재미있는 스윙을 하는 친구”라 했다. 이어 “만약 무리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스윙을 하는 보비 존스처럼 경기를 한다면 평생 골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디섐보를 의식한 듯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유러피언투어에서 함께 경기를 해봤던 매킬로이도 “똑똑하고 실력이 뛰어난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마스터스에 첫 출전하는 디섐보는 클럽하우스에 전시된 보비 존스의 클럽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그는 “그 동안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동일한 샤프트 길이의 클럽을 보게 돼 새롭다.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 이번 여정 자체가 더욱 의미 있고 흐뭇해졌다”며 의지를 다졌다. 디섐보는 1, 2라운드에서 디펜딩 챔피언 조던 스피스, 폴 케이시(잉글랜드)와 동반 라운드를 펼친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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