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 칼럼] 이상무 화백이 골프에게 준 선물
01.04 10:51

그 땐 다들 그랬던 것처럼 어릴 때 만화방에도 자주 갔고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만화잡지도 손꼽아 기다렸다. 중요한 순간 타자 앞에서 확 떠오르는 불가사의한 독고탁의 마구는 나의 마음도 붕 띄웠다.
그래서 몇 년 전 이상무 화백을 처음 만났을 때 기대가 컸다. 마포 가든호텔 건너편 오피스텔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고 컴퓨터를 썼다. 사무실처럼 그의 첫 인상도 아주 강렬하지는 않았다. 외모도 수더분했고 달변도 아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주인공을 쓰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가 왜 평범한 외모의 독고탁을 쓰는지 알 수 있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강렬한 대사도 별로 없다. 그러나 독고탁은, 아니 이 화백은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친근감이 갔다.
이 화백은 “고우영 화백(2005년 별세)이 세상을 떠난 후 의욕이 좀 덜하다”고 했다. 골프 얘기가 나오면 조금 분위기가 밝아졌다. 생애 최저타인 68타를 친 얘기, 쇼트게임이 좋아진 계기, 골프 친구들의 얘기를 할 때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이 화백은 “힘이 세지 않고 키가 크지 않은 사람도 이길 수 있는 골프에서 꿈과 도전 같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유명 만화가들은 골프를 좋아했다. 이상무 화백은 “좁은 작업실에 있다가 필드에 나가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했다. 허영만 화백은 “오후에 골프를 하기 위해 새벽에 나와 오전에 일을 다 끝냈다”고 했다. 이현세씨도 골프 애호가로 버디라는 골프 만화를 그렸다. 버디는 드라마로도 나왔다.
이상무 화백은 90년대 고우영, 허영만, 박수동 화백과 함께 열심히 공을 쳤다. 이 화백은 수준급 골퍼이고 허영만 화백도 한창 때 언더파를 쳤다고 하니 대단한 접전이었을 것이다. 겨울에도 공을 쳤는데 골프장 코스 중간에 양주를 숨겨 놓고 홀짝 홀짝 마시기도 했단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설렘을 주던 독고탁은 서서히 늙었다. 이상무 화백은 50대 중반 들어서는 사실상 전문 골프 화백이 됐다. 골프만화와 레슨물 뿐 아니라 룰이나, 에티켓에 관한 책에 그의 삽화가 많았다. 골프라는 복잡미묘한 스포츠의 매력을 알리는데 그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스포츠 만화는 과장이 필요한데 골프 만화는 과장을 하면 문제가 된다. 스윙을 오버하면 골퍼에게 좋지 않은 오버 스윙이 된다.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립까지 정교하게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정교함은 그림에만 있지 않다. 요즘 ‘라운딩’이라고 잘못 쓰이는 라운드, ‘오너’라고 잘못 쓰이는 아너 등 그의 용어는 정확하다.
어릴적 이상무 등의 만화 캐릭터들을 보면서 스포츠와 인생 뿐 아니라 정의감과 용기 같은 것도 배운 것 같다. 박석환 한국영상대학 교수는 “이상무 화백이 그린 골프 만화는 성인이 된 그의 팬들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그는 좋은 선물을 주고 가셨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골퍼의 정신과 매너였다. 몇 년 전 그와 만났을 때 그는 골퍼의 매너를 몇 번이나 얘기했다. 말수가 많지 않았던 그임을 감안하면 특별히 강조한 거라고 생각된다.
너무 빨리 가신 게 가슴 아프다. 지인들에 의하면 그는 지난 11월에도 “요즘 나이가 들어 볼이 안 맞아서 치기 싫다”면서도 라운드를 하셨다고 한다. 장지는 골프장이 보이는 곳이 어떨까 한다. 편히 쉬시길.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