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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아이돌' 이수민, 컴백 스테이지①

08.09 08:33

풋풋한 골프 아이돌 같았던 이수민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인한 짐승돌로 변신했다. [고성진 사진작가]


2013년 6월 한국 남자골프는 한 선수의 출현에 한껏 고무됐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KPGA 코리안투어 군산CC오픈에서 우승한 이수민이 주인공. 1m80cm의 훤칠한 몸집에 짙은 눈썹과 깨끗한 피부, 힙합을 좋아하고 귀를 뚫은 이수민은 아이돌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리고 2년 후. 같은 무대에서 영광을 재현한 이수민에게서는 예전과는 다른 이미지가 묻어났다. 검게 그을린 겉모습에 어딘가 모를 단단함이 느껴졌다. 풋풋한 아이돌같은 이미지에서 강인한 짐승돌로 돌아온 이수민은 더 높이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정글에서 깨달은 실력과 겸손의 중요성

군산CC오픈에서 첫 승을 올린 후 2년은 이수민에게 롤러 코스터같은 시간이었다. 2년이 마치 2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마추어 우승자로 이름을 알린 그는 ‘차세대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또 한국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도 승승장구하면서 토끼처럼 결승선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러나 너무 일찍 마음을 놓아버린 것일까. 이수민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 나가지도 못하고 레이스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골프 국가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한 이수민은 방황했다. 그해 7월 곧바로 프로 전향을 했지만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2014년 후반기에 4개 대회를 치렀지만 마지막 대회였던 신한동해오픈의 공동 22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는 91타라는 주말 골퍼보다 못한 스코어를 적어 내기도 했다. 그는 “선발전 탈락 후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그냥 되는대로 친 것 같다. 성적에 신경을 안 썼고, 긴장감도 떨어졌다”며 “그렇다 보니 마지막 날에 스코어 관리가 안 됐다. 투어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고, OB가 8개나 났다. 나중에는 볼이 없어서 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게으른 천재’라고 불렸던 그는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거북이’로 변했다. 차분하게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초심을 되찾고자 했다. 그는 “사실 그동안 훈련을 게을리 했던 게 사실이다. 아카데미에서도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그동안 별말을 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는 훈련 과정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았다. 특히 예전에 거의 하지 않던 퍼트 훈련을 하루 3시간 이상 했다”고 말했다.

맹수들이 가득한 정글로 뛰어든 이수민은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바짝 세우고 있다. 이제 샤냥감도 혼자 낚을 수 있는 야수로 성장했다. 위엄을 상징하는 갈기털이 비쭉비쭉 자라나고 있는 사자같다. ‘맹수의 제왕’인 사자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수민은 “예전에는 머리를 묶고 귀걸이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치장에 신경 쓰지 않는다. 실력을 개성으로 만드는 골퍼가 되겠다”며 “아시안게임 선발전 탈락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이수민의 골프는 ‘겸손’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우, 조던 스피스, 마쓰야마 히데키…라이벌의 이름으로

강원도 평창 출신인 이수민은 스키 선수 출신인 아버지 이정열씨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스키를 배웠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수민은 “초등학교 때까지 스키와 골프를 같이 했다. 아버지가 골프연습장을 운영하셨는데 볼을 맞추는 게 즐거웠다. 골프가 스키보다 좋았고, 아버지의 결정도 골프였다”고 전향한 이유를 밝혔다. 아버지 이씨는 아들이 스키 선수를 하기에는 민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결단이 빨랐던 덕에 이수민은 골프 유망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스키를 하면서 산을 주로 탔고, 슬로프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 덕분에 단단한 하체는 남들보다 우월한 경쟁력이 됐다. 튼튼한 하체 덕분에 1m80cm, 68kg의 호리호리한 몸매에도 300야드가 넘는 장타를 펑펑 때려냈고 2011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수민은 2013년 태국 동계훈련 기간 중 비공식이긴 하지만 ‘꿈의 59타’를 적을 정도로 무한한 잠재력을 뽐냈다.

2013년 군산CC오픈 우승은 아마추어 이수민의 이름을 프로 무대에 널리 알린 무대가 됐다. 이수민은 59타에 미치진 못했지만 대회 3라운드에서 10언더파 62타를 치며 골프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62타는 KPGA 코리안투어의 18홀 최소타 타이기록이었다. 몰아치기에 능한 그는 올해 SK텔레콤 오픈 3라운드에서도 9언더파 63타를 쳐 2위를 했다. 그는 “프로라고 해도 6언더파를 치고 난 뒤에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더 줄여도 되나’라는 심리가 생기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평소의 스트로크를 구사하지 못하게 된다”며 “이런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노하우가 생겼다. 오히려 힘을 더 빼고 스코어를 생각하지 않고 퍼트 하나만 집중하는 연습을 계속해왔다. 퍼트 연습도 실제 경기처럼 압박감을 주면서 하기 때문에 18홀에서 많은 버디를 낚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민을 거론할 때면 항상 따라오는 이름이 있다. 동갑내기 친구 이창우다. 이수민과 함께 국가대표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이창우는 친구를 좇아왔다. 이창우는 이수민이 우승을 하고 3개월 뒤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7월 동시에 프로 전향을 했고 둘 중 누가 먼저 프로 우승을 할지도 관심사였다. 이번에도 이수민이 한 발 먼저 내디뎠다. 이수민은 “창우와는 라이벌 의식이 있다. 프로가 된 이후에는 연습하는 곳이 달라 대회장에서만 주로 본다”고 말했다. 이창우는 친구의 우승 소식에 훈련량을 늘리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수민은 항상 이창우보다 빨랐다. 그러나 반대로 좇아가야 할 것도 있다. 마스터스 출전이 그렇다. 이수민은 아직 ‘명인열전’ 무대를 밟지 못했지만 이창우는 2014년에 출전했다. 마스터스 출전을 막은 선수가 바로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였다. 2011년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선수권에서 이수민은 마쓰야마에 1타 차로 뒤져 2위에 머물렀다. 반면 이창우는 이 대회에 우승하면서 마스터스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수민은 “지금까지 경기한 선수 중 마쓰야마가 가장 인상적이다. 파워풀한 스윙을 가지고 있고 저돌적이며 공격적으로 코스를 공략했다. 7번 정도 같이 쳤는데 한 번도 이긴 적이 없고, 저보다 20야드는 더 멀리 쳤다”고 회상했다. 마쓰야마는 일본 투어를 정복한 뒤 미국 무대에 진출했고, 세계 톱랭커로 성장하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조던 스피스(미국)도 이수민과 동갑내기다. 이수민은 “메이저 대회에서 스피스의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게 많다. 같은 나이임에도 차분하고 냉정하다. 코스 매니지먼트 능력이 정말 빼어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스피스가 어린 나이에도 ‘돌부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선 이렇게 분석했다. “스피스는 PGA 투어 3년 차인데 그동안 큰 대회들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다. 압박감과 부담감 속에서 우승경쟁을 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면역이 생겼고, 멘털적으로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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