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개척 조던 스피스의 세번째 관문 세인트앤드루스
07.14 14:13

조던 스피스는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세인트 앤드루스에 입성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만 날 궂기로 소문난 골프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에서는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고 어울렸다.
스피스는 미국 PGA 투어 존 디어 클래식 마지막 6개 홀에서 버디 4개를 잡으면서 극적으로 우승한 13일(한국시간) 밤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왔다. 올해 마스터스에서 최저타 타이기록으로 우승했고 US오픈에서도 역전승을 거두며 그랜드슬램 가도를 개척하고 있는 스피스는 16일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개막하는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3번째 메이저에 도전한다.
세인트 앤드루스의 위도는 모스크바 보다 위다. 여름날 낮은 매우 길다. 스피스는 14일 현지 시간 밤 9시까지 연습라운드를 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스피스의 상승세는 뚜렷하다. 최근 2경기 포함, 올해 4승을 거뒀다. 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가 부상으로 불참하게 되면서 스피스의 디 오픈 우승 가능성은 더 커졌다.
영국 스포츠 도박회사들은 스피스의 우승에 6배 정도를 배당한다. 두 번째로 우승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더스틴 존슨의 2배, 타이거 우즈의 5배 가능성이라고 본다.
조던 스피스는 현대 골프 그랜드슬램(마스터스, US오픈, 디 오픈, PGA 챔피언십 우승)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디 오픈에 온 다섯 번째 선수다. 1953년 벤 호건은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제패하고 여세를 몰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이후 마스터스, US오픈에 이어 디 오픈까지 제패한 선수는 없다.
그랜드슬램 도전사를 둘러보면 링크스(영국의 바닷가 골프장)는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위대한 스타들은 첫 두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골프가 태어난 스코틀랜드 링크스에서 길을 잃었다.
1960년 아널드 파머는 한국의 LPGA 스타 김세영처럼 역전의 명수였다. 그 해 마스터스 마지막 두 홀 연속 버디로 한 타 차 역전 우승했다. US오픈에서는 마지막 라운드를 7타 뒤진 채 시작했으나 과감한 공략으로 65타를 치면서 또 역전승했다.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도 역전이 가능한 듯 했다. 켈 네이글에 4타 차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파머는 1, 2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추격을 시작했다. 당시 파 5였던 17번 홀에서 드라마틱한 버디를 잡았고 마지막 홀에서도 역시 버디였다. 그러나 네이글이 17번 홀 버디를 잡아 한 타 차 2위에 만족해야 했다.
1972년 잭 니클러스는 타이거 우즈처럼 압도적인 스타였다. 마스터스와 US오픈에서 비교적 여유 있게 우승을 했다. 세 번째 메이저인 디 오픈은 뮤어필드에서 열렸는데 66년 그가 우승한 곳이어서 우승 희망은 매우 높았다.
니클러스는 공이 굴러 벙커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3라운드까지 대부분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다. 결과적으로 나쁜 전략이었다. 선두 리 트레비노에 6타 뒤진 채 최종라운드를 시작했다.
니클러스는 4라운드에서는 과감하게 드라이버를 휘두르면서 소나기 버디를 낚았다. 경기 중반까지 6타를 줄이며 공동 선두에 올랐다. 16번 홀 1.5m 파 퍼트를 하는 순간 스코틀랜드의 전통 악기인 백파이프 소리가 울렸다. 퍼트를 넣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트레비노가 17번 홀에서 그린을 놓치면서 보기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레비노는 칩샷을 넣어버렸다. 이 대회에서 트레비노는 칩샷을 다섯 번 홀인시켰다. 니클러스가 이기기 힘들었다.
타이거 우즈는 한국에서 월드컵이 벌어지던 2002년 그랜드슬램의 꿈을 안고 스코틀랜드로 왔다. 디 오픈 우승은 손을 내밀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즈는 이전 메이저 11개 대회에서 7승을 했다. 그 해 마스터스, US오픈에서 3타 차로 우승했다.
코스는 니클러스를 좌절시킨 뮤어필드였다. 1, 2라운드 우즈는 잘 했다. 선두와 2타 차였다. 그러나 대자연이 우즈에게 그랜드슬램을 허락하지 않았다. 3라운드 북해에서 차고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우즈의 길을 막았다. 당시 숫자는 이랬다. 온도는 영상 4도, 바람은 초속 18m, 우즈의 보기 수는 7, 더블 보기 수는 2, 타수는 81. 그가 잡은 버디는 1이었다. 우즈는 마지막 날 안간힘을 쓰면서 65타를 쳤지만 그래도 6타가 모자랐다.
남자들만 그랜드슬램에 도전한 것은 아니다. 박인비는 2013년 역시 상당히 현실적인 꿈을 안고 스코틀랜드로 왔다. 3개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파죽지세였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여자 메이저 중 4번째 대회였다. 이 대회만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당시 코스는 세인트 앤드루스였다. 박인비는 10번홀까지 6언더파로 맹렬히 달렸다. 우즈가 2000년 US오픈이나 1997년 마스터스에서 그런 것처럼 10타 차가 넘는 압승도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드라이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퍼트까지 같이 흔들렸다. 박인비는 컷은 통과했지만 하위권으로 그랜드슬램 도전을 끝냈다. 박인비는 아직도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이 한으로 남아 있다.
세인트 앤드루스=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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