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바지 마법'으로 공황장애 이겨낸 문경준
05.17 17:32

문경준이 ‘빨간 바지 마법'으로 공황장애를 이겨냈다.
GS칼텍스 매경오픈 최종 라운드가 열린 17일 경기도 성남 남서울 골프장. 문경준은 강렬한 빨간 바지를 입고 나서며 우승 의욕을 드러냈다. 문경준은 대회 2라운드에서도 빨간 바지를 입었는데 6언더파 66타를 치며 선두로 치고 나간 좋은 기억이 있었다. 결국 그는 '빨간 바지 마법'으로 지난해 준우승 2차례의 아쉬움을 털어내며 생애 첫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문경준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역전의 여왕’ 김세영처럼 최종 라운드에 빨간 바지를 입고 나서고 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최종 라운드에서 빨간 바지를 입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빨간색을 좋아 하신다”라며 “빨간색을 입으면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고 털어놓았다. 2008년 투어 생활 중 갑자기 공황장애가 왔던 문경준은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정신질환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지만 빨간 바지의 마법과 자기 최면으로 이를 이겨냈다.
문경준은 “코리안투어 입성 초반에도 잘했다. 신한동해오픈 챔피언 조에서 최경주 프로와 함께 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에 정신적으로 공황장애 비슷한 게 왔다. 대학병원의 박사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신경안정제 같은 것을 줬다. 하지만 안 먹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물어보니 만약 한번 약을 먹으면 불안하면 계속해서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라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2009년에도 공황장애 증세를 안고 투어 생활을 했다. 증세를 고치기 위해서 명상도 해봤지만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그는 “10층 이상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심장이 쿵쾅쿵쾅 거려 쓰려질 것 같았고, 죽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연습을 많이 안 하고 그냥 투어만 뛰는 식으로 했는데 생각보다 성적은 잘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신질환 증세가 잘 고쳐지지 않아 결국 군입대를 결정했다. 공익근무였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증세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문경준은 “명상을 하고 산에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었다.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고 정신 없이 지내다 보니 증세가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다. 2012년 문경준은 자체 진단을 내렸다. ‘잘 하려고 하고, 우승 하려고 하니까 긴장을 심하게 하게 되고 질환까지 왔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문경준은 목표 자체를 바꿨다. “50세 시니어까지 가보자 것을 투어 생활 목적으로 잡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강조했다.
공황장애 증세를 어느 정도 이겨낸 문경준은 “오늘도 아침에 나갈 때 예전보다 덜 떨렸다. ‘긴장을 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스스로 하는 정도였고, 숨도 제대로 쉬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해 2개 대회 준우승 경험을 바탕으로 헤쳐나갔다. 문경준은 “짧은 퍼트를 계속 빼고 안 되자 ‘후반에 망가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가끔 났다. 하지만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혼잣말로 ‘하면 된다’, ‘나는 된다’를 되새겼다”고 말했다. 그는 티샷하고 세컨드 샷을 하기 전까지 걸어가는 동안 ‘하면 된다’는 자기 주문을 했고, 세컨드 샷을 하고 세 번째 샷을 하기 전까지는 ‘나는 된다’라는 최면을 걸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려고 했다.
고교 1학년 때까지 테니스를 했던 문경준은 “테니스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골프는 정신적으로 힘든 것 같다. 하지만 골프는 해볼만한 종목인 것 같다. 저 같이 완벽하지 않은 선수도 퍼트를 잘 하면 우승도 할 수 있는 게 골프다. 완벽한 사람들은 완벽하게 하려고만 하는데 저는 기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잘 컨트롤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골프 종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성남=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