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히터' 김대현의 이유있는 변신①
04.29 08:25

수더분해진 김대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장타왕 이미지를 버린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트레이드마크인 장타를 놓으면 이제 무엇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단 말인가. 의문은 경험을 토대로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김대현의 설득력 있는 반론에 금세 풀렸다.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든 김대현은 파워에 노련함까지 더했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2011년 말 어깨 부상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김대현에게 어쩌면 운명이었다.
장타 아닌 정교함으로 승부
김대현은 2008년부터 4년간 KPGA 코리안투어 장타왕을 차지한 거포다. 미국 PGA 투어에서 존 댈리가 300야드의 장타시대를 연 상징적 인물이라면 코리안투어에서는 김대현이 파워히터의 선구자였다. 그는 2009년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 303.682야드를 찍으며 ‘300야드 시대’를 활짝 열었다. 당시 72kg 왜소한 몸매에도 폭발적인 파워 내뿜은 김대현에게 팬들은 열광했다. 김대현은 “2009년에는 백스윙부터 시작해 스윙 폭이 모두 컸다. 완전한 풀스윙이었다. 또 젊었고 무서울 게 없었기 때문에 핀을 향해 바로 지르는 스타일이었다”라고 회상했다.
화끈한 골프로 김대현은 KPGA 투어를 정복했다. 2009년 한중 투어 KEB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1부 투어 첫 승을 챙겼고, 이듬해 매경오픈을 석권하더니 상금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그는 “2010년도가 전성기였던 것 같다. 심리적으로 압박감도 없고 편하니까 생각없이 겁 없이 쳤다”라고 털어놓았다. 김대현은 2011년에도 우승은 비록 없었지만 장타왕 타이틀에 톱10 피니시율이 무려 70%에 달할 정도로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상금랭킹은 8위였다.
그러나 2011년 말 체력 트레이닝을 하다가 어깨를 다친 뒤 파워가 점점 떨어졌다. 2012년 장타왕 타이틀도 김봉섭에게 내줬다. 김대현은 “골프를 알고 나서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면서 헤맸다. 2012년 전반기에는 정말 안 풀렸다. 전반기에 출전하는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제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고백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2012년을 시작했던 김대현은 겨울 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원인조차 알 수 없었던 그는 휴식기 6주간 우정힐스에 들어가 미친 듯이 훈련했다. 그는 “하루 11시간씩 아무 생각 없이 훈련만 했다. 웨이트도 하고 심리적인 상담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노력은 결과로 이어졌다. 후반기에 서서히 경기력을 회복한 그는 먼싱웨어 챔피언십에서 통산 3승을 챙겼고, 마지막 대회인 한국오픈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부활했다.
그렇지만 지난해는 반등조차하지 못했다. 드라이브 샷 거리도 평균 286.971야드로 전성기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그는 “선수는 핑계를 대면 안 되지만 어깨를 안 좋아서 3라운드가 되면 손까지 떨렸다. 맘껏 스윙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겨울 동안은 재활에만 힘썼다. 그는 “몸이 받쳐줘야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것 느꼈다. 골프는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롱런을 위해선 몸에 부담이 되지 않는 편한 스윙이 필요했다”며 “장타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장타왕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지만 이에 대한 욕심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올해는 정교함으로 승부하는 새로운 김대현의 골프 인생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변신을 예고했다.
절망 속에서 피어오른 희망
미국에 진출했던 김대현은 지난해 국내로 유턴했다. 팬들은 장타왕의 귀환에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성적은 초라했다. 매치플레이를 제외하고 SK텔레콤의 공동 7위가 최고 성적이었고, 상금순위는 36위에 그쳤다. 폭발적인 장타도 실종됐다. 그렇다 보니 팬들 사이에서 “김대현 끝났다. 거리도 안 나고 그럴 줄 알았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당연히 김대현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안 보는 데서 엄청 이를 갈았다.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2013년과 2014년은 성적으로 보자면 김대현 골프 인생의 시련기다. PGA 투어 2부인 웹닷컴 투어에서 고전했고, 부족함을 절감하고 국내로 유턴했는데 코리안투어에서조차 신통치 않았다.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김대현은 “자존심도 상하고 계속 예선을 떨어지니까 한 두 경기 동안에는 미칠 것 같더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리적인 압박감이 심한 데다 이러 저리 불려 다니는 자리도 많아서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김대현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희망을 발견했다. 미국 진출 실패, 그리고 어깨 부상 악화까지도 모두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다시 2013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미국 진출을 택하겠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골퍼들이 많다. 2부 투어에 도전하면서 다른 동료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 정도로도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또 그는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고, 그만큼 많이 배우고 돌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덧붙였다.
왼쪽 어깨의 회전근개 파열도 병이 아닌 약으로 여겼다. 김대현은 “만약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더 크게 터져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일찍 알았기 때문에 재활을 통해서 스윙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코스 매니지먼트 등에 대한 연구와 고
민도 깊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김두용기자 enjoygolf@joongang.co.kr
*김대현 인터뷰는 월간 JTBC 골프매거진 5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기사는 모바일 매거진(magazine.jtbcgolf.com) 또는 온라인(www.jtbcgolfi.com) 등을 통해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