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인정한 DNA, 승부욕 100점 안병훈②
03.16 13:21

<b>부모도 인정한 경쟁 DNA, ‘승부욕 100점’</b>
날카로운 눈매와 붕어빵 외모도 그렇지만 안병훈은 부모를 빼닮아 승부욕도 강하다. 이런 승부욕이 그를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정상까지 서게 했다. 그는 “2부 투어 생활이 정말 힘들었지만 부모님이 끝까지 믿고 도와주셨다. 특히 부모님께 물려받은 경쟁 DNA가 있어서 남한테 지는 게 싫었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도 “운동선수로서 승부욕은 정말 100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히려 승부욕이 지나쳐서 문제일 때가 있다. 안재형은 “적당한 승부욕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지나친 승부욕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누그러뜨리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아버지 안씨가 보기에 스스로에게 용서가 안 되고 화가 나서 결국 멘탈이 흔들리는 상황이 자주 나왔다. 안재형은 “혼내기도 하고 달래도 봤지만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더라. 본인이 많이 아파보고 겪어봐야 깨달을 수 있는 문제였다”라고 설명했다.
승부욕이 과해서 의견 충돌도 잦았다. 골프 유학을 비롯해 10년 넘게 아들의 캐디백을 메며 알파 대디(alpha Daddy) 역할을 했던 안재형은 “스스로 감정 조절이 안 돼 멘탈이 흔들리는 건 용서할 수 없더라. 샷이 안 되고, 성적이 좋지 않은 건 괜찮다.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리면서 치는 건 정말 못 보겠더라. 필드에서 고성과 함께 인상을 쓰면서 야단치기도 했다”며 탄식했다. 특히 샷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클럽을 땅에 내리 찍을 때는 “마치 내 가슴을 내리 찍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라고 회상했다.
<b>골프를 위한 맞춤형 신체조건</b>
안병훈이 골프를 시작한 건 필연적이었다. 1980~90년대에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아버지 안씨의 영향으로 골프 클럽을 쥐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골프에 흥미를 보이자 골프부가 있는 세종초로 전학을 시켰고, 방과 후 취미활동으로 골프를 즐기게 했다. 이후 전문가에게 레슨도 받는 등 여느 선수처럼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골프 꿈나무로 성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골프를 시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아들이 골프에 흥미를 보여 반대하진 않았지만 이처럼 많은 비용과 희생이 뒤따르는지 알았다면 골프를 시키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안재형은 “이렇게 어렵고 심오한 운동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반대했을 것이다.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밀고 나간 것 같다. 할아버지까지 동원되는 등 가족 전체가 병훈이에게 매달려 희생했다. 경쟁도 너무 심했다”라고 푸념했다.
안병훈이 점점 알려지면서 안재형은 “탁구를 했는데 왜 골프를 시키느나”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사실 처음에는 탁구를 시키려고도 했다.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손 감각이 탁월했다. 탁구의 다양한 손 기술을 곧잘 따라하는 재능도 보였다. 그러나 하체가 문제였다. 탁구는 풋워크가 중요한 데 몸집이 큰 안병훈은 하체가 따라주지 않았다. 안재형은 “센스 있게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종목이 탁구라 병훈이는 빠릿빠릿하지 못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하체가 튼튼한 안병훈의 신체 조건은 오히려 골프에 적합했다. 하체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운데 손 감각이 뛰어났던 게 골프에 큰 도움이 됐다. 쇼트 게임 같은 경우는 감각 운동 측면이 강해 손 기술이 좋으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아버지 안재형의 베스트 스코어는 80타다. 그는 “탁구라는 감각운동을 수십 년간 하다 보니 쇼트 게임과 퍼팅감은 남들보다 빨리 익히는 것 같다. 그리고 남들보다 캐치하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골프에 더 빠져들었다”라고 분석했다. 아들 안병훈은 300야드를 펑펑 때리는 장타자고, 아버지 안재형은 한때 250야드를 보냈다고 한다. 사업가로 변신한 엄마 자오즈민은 햇빛을 싫어하고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하는 골프 종목에 적응하지 못해 여전히 비기너 수준이다.
<b>캐디백 내려놓은 아빠의 당부 편지</b>
안병훈은 올해 유러피언투어 첫 3개 대회에서 12위-5위-13위의 상위권 성적을 내며 돌풍을 일으켰다. 데뷔 전인 아부다비 HSBC 골프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는 프로 첫 홀인원도 이뤄 좋은 기운을 받았다. 안병훈은 “일단 1차 목표는 시드를 유지하는 거다. 2부 투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치열한 승부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다. 1부 투어 코스가 더 어렵지만 2부에서 착실히 준비했기에 나만의 길을 걸어가겠다. 내 가치를 증명하겠다”라고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안병훈은 10년 넘게 자신을 뒷바라지했던 아버지 대신 전문 캐디를 영입해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안씨는 지난해 디 오픈을 제외하고는 2009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과 2014년 롤렉스 트로피 등에서 아들의 백을 메고 감격적인 순간을 함께 해왔다. 안재형은 “디오픈을 이틀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훈이 혼자 영국에 가야 했다. 수습을 하고 목요일 오전에 대회장에 도착했고, 마침 티오프 전이라 아들 경기를 모두 볼 수 있었다”라며 “알던 캐디에게 SOS를 했는데 마침 스케줄이 비어서 대회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고, 홀로서기에 대한 믿음도 커졌다”며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안재형은 군소리 없이 힘든 여정을 무덤덤하게 넘긴 아들이 듬직하기만 하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인지 음식 투정 없이 빵과 스파게티 등 밀가루 음식으로도 잘 버텨온 아들이다. 집이 그리울 만한 나이인데도 타지에서 불평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가장 소중한 추억인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진열해주지 못한 것이다. 트로피 진품은 1년 후 반납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골프협회(USGA)에서는 우승자가 원하면 모형 트로피를 별도로 제작해준다. 모형 트로피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 무려 1만5000 달러에 달해 아직까지 마련해주지 못했는데 안재형은 “반드시 제작해서 멋지게 진열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재형은 “3년간 힘든 길을 잘 견디며 1부까지 올라갔다. 시즌 초반 예상보다 너무 잘하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1년을 길게 보고 매 시합을 집중했으면 한다. 안 된다고 조급해 하지 말고 골프인생은 기니까 차분히 한 단계씩 밟아 나가 성공한 골퍼가 됐으면 좋겠다. 유럽 전역을 돌며 힘들지만 값진 경험들을 쌓았기에 혼자서도 잘해낼 거라 믿는다”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