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세컨드샷-김효주와 연예기획사
03.05 10:12

1940년대 시카고의 골목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날카로운 브레이크 파열음을 내며 멈춰 섰다. 한 소년이 이 차에 치여 튕겨 나갔다. 소년의 이름은 마크 매코맥. 역설적이지만 이 교통사고로 인해 골프와 스포츠는 고속도로를 달리게 됐다.
매코맥은 머리를 다치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회복했지만 의사는 신체 접촉이 있는 스포츠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던 그에겐 교통사고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실의에 빠진 아들에게 골프 클럽을 선물했다. 매코맥은 대학 시절까지 골프선수로 활약했으며 아마추어로 US오픈에 나가기도 했다.
실력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클리블랜드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59년 매코맥은 골프대회에 구경을 갔다가 아널드 파머를 만났다. 대학 시절부터 파머와 친분이 있던 그는 개인 비즈니스 매니저를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TV시대 스포츠와 스포츠 스타의 중요성을 예지했기 때문이다.
파머는 손을 내밀어 매코맥과 악수를 했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시작이었다. 매코맥과 파머는 아무런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믿었고 존중했다. 파머는 『골퍼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마크는 내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도 마크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고 적었다.
매코맥은 IMG(International Management Group)라는 회사를 차리고 개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와 계약했다. 1960년대 IMG라는 우산 속에서 세 골퍼는 황금 트리오가 됐다. 그들은 매코맥의 창의력 덕에 스폰서를 얻고 광고 모델이 됐으며 초청료를 받기 시작했다.
선수뿐만이 아니라 골프라는 스포츠도 매코맥이 키웠다. 그는 월드 매치플레이 챔피언십과 스킨스 게임을 만들었다. 골프장에 스폰서 VIP를 위한 접대 텐트와 세계랭킹을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테니스 코트도 엘도라도로 만들었다. 그의 호주오픈 복식 2회 우승자인 첫 부인 베시 네이글슨을 통해 그는 테니스 스타들과 친분을 쌓아갔다. 비에른 보리, 피트 샘프러스, 크리스 에버트, 로저 페더러 등 테니스 수퍼스타들은 거의 IMG와 계약했다. 매코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골프뿐 아니라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도 들어갔다.
그는 인간적이었으며 혜안이 있었고 창의적이었으며 협상에 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서 21주간 1위를 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 등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다.
그러나 IMG가 거대한 스포츠 공룡으로 커가면서 이런저런 문제도 나왔다. IMG의 황금기인 1980년대부터 골프계에서는 ‘IMG에 당했다(being IMG’d)’는 말이 유행했다. 뛰어난 성적을 낸 선수가 IMG와 계약하면 이듬해 성적이 나빠지는 현상이다. 전 세계에 걸쳐 촉수가 뻗쳐 있는 IMG는 지명도 높은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시키며 돈을 많이 벌어줬다. 그래서 선수가 너무 많이 활동하다가 다치거나 과로로 성적이 나빠졌다.
물론 IMG는 ‘being img’d’라는 말이 억울한 측면이 있다. IMG가 선수들에게 더 활동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인 선수가 싫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다. 또한 현명한 에이전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는다.
그러나 에이전트들은 오너인 매코맥과 달리 장기적으로 선수를 보지 못하고 실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었다.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벌 수 있을 때 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굳이 톰 크루즈가 나온 에이전트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들지 않더라도 월급장이들은 회사 안에서 자신의 철학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선 스포츠 선수가 IMG와 계약한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던 때가 있었다. 최고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가 계약할 정도로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IMG는 선수가 어려울 때 매몰찬 곳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거대 제국 IMG는 패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타이거 우즈의 에이전트인 마크 스타인버그는 2009년 섹스 스캔들 이전까지 IMG의 핵심 인물이었다. IMG의 상징인 골프 전반을 그가 관리했다. 그는 이름이 마크인 점 외에도 창업자인 매코맥과 공통점이 많다. 시카고 인근에서 태어나 농구를 했다.
일리노이 대학에 체육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들어가 농구 선수가 됐다. 89년 ‘3월의 광란’ 미국 대학농구 64강 토너먼트에서 4강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92년 인턴으로 IMG와의 인연을 시작했고, 94년 당시로서는 무명이었던 안니카 소렌스탐을 영입했다. 95년 소렌스탐이 US여자오픈 우승으로 골프 여제의 길에 접어들면서 스타인버그의 명성도 함께 올라갔다.
그는 98년 골프 황제인 타이거 우즈의 에이전트까지 맡게 됐다. 우즈가 IMG에 담당 에이전트 휴스 노턴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해 대타로 나선 것이다. 노턴은 타이틀리스트와 60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해 줬지만 미디어와 이런저런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타이거 우즈에게 해고됐다. 우즈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 하는 미디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우즈-스타인버그 팀은 골프시장을 한 단계 키웠다고 평가받는다. 스타인버그는 유대인 상사 덕에 고속승진을 했다는 비난 속에서도 거물 우즈를 17년 동안 끌고 가는 역량을 발휘했다.
스타인버그는 “고객에겐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스맨’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섹스스캔들이 터졌을 때 스타인버그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의문이 나왔다. 그를 우러러보던 후배 에이전트들은 스타인버그가 우즈에게 직언을 못하는 예스맨에 불과한 걸 알고 실망했다는 반응이었다.
2011년 스타인버그는 IMG를 그만뒀다. 그의 연봉은 우즈로 인해 회사가 버는 돈에 연동되어 있는데 고객의 상품성이 떨어져 수익이 줄어들자 자신의 임금도 확 떨어져 아예 독립한 것이다. 우즈는 “스타인버그에 무한한 신뢰가 있다”면서 그를 따라 나섰다. “우즈가 스타인버그를 따라 나간 이유는 치부를 너무 많이 알아서”라는 루머가 돌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렉 노먼, 잭 니클러스, 카리 웹 등은 IMG에 있다가 자신의 에이전트와 함께 나왔다. 본인이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린 경우도 있고 에이전트가 만든 회사와 계약을 맺은 경우도 있다.
IMG는 2013년 연예전문 회사인 윌리엄 모리스 인데버(WME)에 팔렸다. 가격은 23억 달러(약 2조4000억원)로 추정된다.
김효주가 소속된 스포츠 마케팅, 매니지먼트사 G애드가 연예기획사 YG에 팔린 것과 비슷한 사건이다. G애드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지만 핵심 자산은 김효주다. 여기서 돌아볼 것이 있다.
매니지먼트 계약은 소유권이 인정 되지 않는다. 대행 계약, 위탁 계약이기 때문이다. 양도가 안 된다.
G애드의 핵심 자산은 김효주다. 만약 매각 때 김효주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의 가치가 인수금에 반영됐다면 G애드는 양도가 안 되는 김효주와의 계약도 YG에 판셈이다. 따라서 매니지먼트 계약의 가치에 대해서는 G애드와 YG가 아니라, 김효주와 YG간에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계약에는 매니지먼트사의 주인이 바뀌거나 경영상 변동이 생기면 해지 또는 재협의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김효주가 계약에 불만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차후에 분쟁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YG 박진수 회계사는 이에 대해 "G애드의 주식을 산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고 매니지먼트 계약서에 ‘주인이 바뀌거나 경영상 변동이 생기면 해지 또는 재협의 할 수 있다’는 문구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YG가 G애드를 산 건 김효주와의 계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G애드와 김효주간의 신뢰, 믿음을 포함한, 업무능력 등의 가치를 판단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IMG가 WME에 매각될 때도 선수들의 계약이 따로 계산되지 않았다.
김효주가 큰 회사인 YG와 함께 일하면 장점이 많을 것이다. 골프 한류를 일으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효주와 한국의 골프 선수들, 골프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반면 ‘IMG에 당했다(being IMG’d)’는 표현처럼 기획사에 ‘기획’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참고로 또 다른 대형 연예 기획사인 SM도 조만간 골프를 포함한 스포츠 시장에 들어온다는 루머가 들린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