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목록

성호준의 세컨드샷-해링턴의 10만 스윙론

03.03 09:11

6년여만에 우승한 파드리그 해링턴[골프파일]

파드리그 해링턴(44.아일랜드)이 3일 6년 여만에 빅리그에서 우승했다. 놀랍게도 그의 세계랭킹은 297위였다. 메이저 3승을 한 해링턴이 이만큼 망가졌나 해서 놀란 게 아니다. 그는 이보다 더 깊이 추락했었다. 세계랭킹 297위가 어떻게 PGA 투어에서 우승했는가라고 놀란 것도 아니다. 골프에서는 자주는 아니지만 컨디션에 따라 그런 일이 가끔 나온다.

기자가 놀란 이유는 지난 주 대회에서 우승한 제임스 한도 당시 세계랭킹이 297위였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이지만 필연이 전혀 없지도 않다고 본다. 두 대회 모두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날이 화창할 때는 공을 멀리치고 퍼트도 잘 하는 젊고 몸 좋은 랭킹 상위권 선수들이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

날이 좋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강한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유리해진다. 날이 안 좋은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노장 톰 왓슨이 잘 하는 이유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제임스 한과 해링턴은 골프에서 소문난 좋은 사람이다. 해링턴은 골프에서 가장 멋진 실격자다. 제임스 한은 지난 주 우승 인터뷰에서 멋진 인격이 밝혀졌다.

다른 공통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제임스 한은 2년 전 강남스타일 춤을 춰 화제가 된 것을 제외하곤 철저히 무명이었고 해링턴은 디 오픈(2차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화려한 선수라는 큰 차이가 있다. 해링턴은 2007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3개월 동안 메이저 3승을 했다. 당시 최고 선수였다.

그러나 해링턴도 처음부터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같은 아일랜드 섬 출신 그레이엄 맥도웰이나 대런 클락, 로리 매킬로이처럼 천재형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회계사 자격증이 있는데 골프로 돈을 벌기 어려울 것 같아서 딴 것이다.

그의 첫 메이저 우승은 2007년 디 오픈 챔피언십이었다. ‘악마의 발톱’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누스티 마지막 홀에서 해링턴은 두 번이나 물에 공을 빠뜨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째 샷을 핀에 붙여 더블보기로 완전한 파멸은 막았다.

해링턴의 실수로 한 타 차 선두가 된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보기를 하면서 연장전을 허용하고 결국 졌다. 가르시아는 “이런 패배는 내 인생에 너무 많아 이젠 뉴스도 아니다”고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해링턴은 “위기에서는 더욱 용기를 내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며 난 그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가르시아는 아직도 메이저 우승을 못했다. 해링턴은 두 번 더 했다.

해링턴이 메이저 3승 후 망가진 건 더 완벽을 위해 스윙 교정을 하려다였다. 정상급 선수의 스윙 교정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다. 타이거 우즈는 스윙 교정을 안했다면 지금 메이저 20승을 했을 거라는 얘기를 듣는다. 해링턴도 당연히 “잘 되고 있는데 왜 스윙을 바꿔서 고생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해링턴은 항상 “좋아지고 있는 과정이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운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샷이 최고로 좋았는데 퍼트 입스를 겪었다. 골프 룰과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가 롱퍼터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해링턴은 “롱퍼터는 규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피하지만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써보겠다”고 했다. 그만큼 애절했다.

3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해링턴은 아시안 투어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오랜만에 우승했다. 그 때 해링턴은 “올 겨울 49일간 10만 번의 스윙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하루 2000개가 넘는다. 하루 스윙 2000번, 프로 선수라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비숙련자의 팔로만 치는 스윙 같은 것으로는 2000개 스윙이 별로 어렵지 않다. 프로 골퍼의 스윙은 매우 부드러워서 아마추어의 스윙보다 힘이 덜 든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이승엽이 한 시즌 56개 홈런을 칠 때 야구담당기자였다. 그의 스윙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말 그대로 물 흐르는 듯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렇게 부드럽게 치는데 어찌 공이 멀리나가느냐고 이승엽은 웃으며 “있는 힘을 다해 친다”고 했다.

몸의 중심을 고정하고 몸을 최대한 꼰 후 팔이 아니라 하체로 리드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온 몸의 큰 근육이 다 동원되고 무릎, 허리, 발목 등에 강한 압력이 전해진다. 골프 선수들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는 30분 정도만 치고 퍼트와 쇼트게임 연습에 중점을 두는 것도 그래서다. 힘들고 부상 위험도 크다.

해링턴이 10만 스윙을 채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는 선수다. 그의 트레이너는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파드리그를 운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리는 것이다. 그냥 놔두면 죽을 때까지 운동을 하는 스타일이다.” 해링턴은 “연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연습으로 얻는 것은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많은 연습으로 스윙의 비밀을 풀었느냐는 질문에는 “비밀은 스윙에 비밀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 제임스 한은 90위로, 해링턴은 82위가 됐다. 이번 주 297위는 스티브 웹스터다. 이번 주 유러피언투어 아프리카 오픈에 나간다. 만약 297위인 웹스터가 또 다시 우승한다면 그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sung.hojun@joongang.co.kr

  • 공유

자랑하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