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세컨드샷-제임스 한의 거울 앞 주문
02.25 05:56

기자는 PGA 투어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제임스 한이 우승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상상도 못했다. 우승 경쟁을 하던 선수가 너무나 화려했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US오픈 2승의 레티프 구센, 타이거 우즈 전성기에 올해의 선수상을 타기도 했던 비제이 싱, 미국 최고 영건 조던 스피스, 더스틴 존슨, 폴 케이시, 세르히오 가르시아 등이었다. 병역 파문 와중에도 우승 경쟁을 하기도 하는 배짱(?) 좋은 배상문이라면 몰라도 경력이 너무나 초라한 제임스 한이 그 곳에서 버티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이른바 ‘클래스’에서 제임스 한은 경쟁자들과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는 잉글랜드 FA컵 본선에 나온 4부 리그 팀 같았다. 그런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첼시 같은 화려한 팀을 꺾는 파란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우승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제임스 한은 한국에서 뛴 경력이 있다. 외국인 선수 Q스쿨을 통해 2007년 자신이 태어난 코리언 투어에서 뛰었다. 그 때 4월에서 9월까지 9개 대회에 나왔다. 컷 통과를 다섯 번했고 평균타수는 75.54였다. 상금은 모두 합쳐 818만원으로 112위였다. 백화점 구둣가게에서 일하면서 번 돈을 한국에서 다 까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평균 타수 1위는 김경태(70.75)였다. 배상문은 4위(72.85)였다. 제임스 한은 김경태에 비해 라운드당 4.79타, 배상문에 비해 2.69타를 더 쳤다. 4라운드로 치면 김경태에 비해 약 20타, 배상문에 비해 10타를 더 친 것이다. 제임스 한은 출전자격을 따지 못해 국내 메이저대회에는 나가지 못했는데 코스가 어려운 메이저 대회에 나갔다면 평균 스코어는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제임스 한이 당시 어린 나이였다면 경험이 부족하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다. 스물한 살 김경태와 배상문이 펄펄 나는데 제임스 한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고국의 잔디는 그에게 얼마나 차가왔을까.
심지는 굳었던 것 같다. 코리언 투어에서 제임스 한은 김종덕, 현재 KPGA 회장인 황성하씨와 한 조로 경기한 적이 있다. 김종덕은 제임스 한이 무려 87타를 치는 치욕을 당한 대회에서 파트너였다. 김종덕은 “OB가 나면서 첫 홀에서 양파가 났고 둘째 홀에서 7오버파 정도를 쳤다. 볼을 다룰 줄 아는 선수였는데 OB가 나도 스윙을 줄이지 않는 고집이 있었다”라고 했다. 황성하 회장은 “해외에서 온 교포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과 정서가 달랐으나 제임스 한은 매우 예의가 바른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그래도 프로 선수가 평균 타수 75타가 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비루한 인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제임스 한이 성공한 이유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Q-‘경기 후반 들어 비가 와서 여러 선수가 고생을 하고 점수를 잃었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느라, 또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느라 바빴다. 날씨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제임스 한-“(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경기 전 캐디에게 말했다. 나는 비를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한다. 거리를 깨끗하게 하고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는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샌프란시스코만 부근에는 비가 자주 왔다. 그러고 나면 거리가 티 없이 깨끗해졌다. 정말 그걸 사랑했다. 골프장에도 매일 비가 왔는데 나는 그 빗속에서도 항상 혼자 연습을 했다. 그리곤 집에 돌아가서 거울을 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너 알지. 너 오늘 열심히 했어. 너는 이제 휴식을 취하고 푹 자도 되. 열심히 한 너에게는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만 해.’ 오늘 비가 올 때 예전의 일들이 생각이 났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난 비를 사랑한다. 골프는 공정한 날씨를 주는 스포츠가 아니다. 우리는 실내에서 경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비가 수평으로 날렸다. 나는 ‘신이시여, 이건 좀 너무해요’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는 그쳤고, 결국 오늘은 아주 아름다운 날이 됐다.”
그랬다. 태양이 다시 떴고 그는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120만 달러 상금도 받았다.
이런 선수가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선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선수의 이야기야말로 스포츠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본다.
앞으로도 제임스 한은 멋지게 지낼 것 같다. 제임스 한이 가끔 거울에 대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조그만 도시에서 자랐고 대학에서도 잘 하지 못했다. 한 동안 신발을 판 사람이다. 어느 날 퍼트가 들어가기 시작하고 플레이가 나아졌다. (작은 투어에서) 몇 번 우승해 PGA 투어에 있지만 나는 아직도 무일푼으로 미니투어에서 뛰던 날을 기억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려 했다.”
기자는 그의 팬이 됐다. 그가 또 우승을 하든 그렇지 않든 제임스 한이라는 존재 자체가 멋지다. 그래서 기자도 매일 일과 후 거울을 보기로 했다. 혹시 아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