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세컨드샷-편히 잠드소서
02.17 08:46
최근 스포츠 전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이 분들에 대한 부고 기사가 나왔지만 세컨드샷도 그들의 남긴 정신을 한 줄씩 전한다.
빌리 캐스퍼(프로골퍼, 83세)
1966년 US오픈에서 아널드 파머에게 9홀을 남기고 7타를 뒤지다가 역전시킨 사람. 그가 맞서 싸운 건 파머 한 명이 아니었다. 당시 파머에게는 Arnie's Army(아널드 파머의 군대)라는 추종자들이 있었다. 조직적인 응원단이었다. 캐스퍼는 야유와 방해를 하는 파머의 군대에게도 이겼다. 이 충격적인 패배 후 파머라는 첫 TV 스포츠스타, 첫 스포츠의 슈퍼스타는 사실상 선수로서는 반신불수가 된다.
캐스퍼는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사실상 방치되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그는 부모님이 내린 가난의 사슬, 세상에 대한 증오의 사슬을 끊었다. 무려 11명의 아이를 키웠다. 그 중 여섯은 입양한 아이였다. 캐스퍼는 “다른 생각은 없었다. 아이가 11명이어서 가족 먹여 살릴 생각뿐이었다. 여러 선수가 경기 중 압박감을 받는다는데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고 했다. 골프계의 국제시장 윤덕수, 편히 잠드소서.
제리 타카니안(전 네바다주립대 라스베이거스 대학 농구 감독, 84세)
찰거머리 같은 수비와 열정의 미국 대학농구의 특성을 만든 사람. 풀코트 압박 수비를 창안했고 수비를 별로 안 하는 NBA는 너무나 재미가 없다고 한 사람. 이기기 위해 절망 속에 있는 아이들, 때론 교도소에 있는 아이들까지 스카우트하려 한 사람. 그들 중 일부는 뒷거리의 마약 소굴로 돌아갔지만 일부에게는 평안과 희망을 찾게 해 준 사람. 이란과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 부모 밑에서 자라 인생은 결국 절망뿐이란 걸 알면서도 이를 열정으로 이겨낸 지도자. 결코 채워지지 않는 승리에 대한 욕구 때문에 경기 중 수건을 씹어야 했던 사람. 농구 밖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은퇴한 후에야 처음으로 연예소설을 본 이 사람, 그걸 보고 너무 슬퍼한 사람, 편히 잠드소서.
딘 스미스(전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농구 감독, 83세)
마이클 조던을 경기당 20점 이내로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러면서 농구황제에게 성실함을 심어준 감독. 마리아노 리베라같은 끝내기의 마법사. 감독 초창기엔 학생들로부터는 인형 화형을 당하는 등 철저히 미움을 받더니 사임할 때 모든 학생을 울게 만든 사람. 세상을 알기 위해 감독시절 레스토랑 자리 안내 아르바이트까지 한 사람. 미국 남부 명문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흑인 농구 선수를 발탁한 사람. 무하마드 알리도 아니면서 반전 목소리를 낸 스포츠계 유력자. 공군사관학교 농구 코치로 있으면서 골프 코치도 겸임한 사람. 23년 연속 노스캐롤라이나를 NCAA 토너먼트에 올린 감독, 편히 잠드소서.
찰리 시포드(프로골퍼, 92세)
흑인은 집에 가라고 백인들이 넣어 놓은 홀 속 인분을 치워내고 퍼트를 해야 했던 사람. 경기 후 백인들에게 야유를 받고, 경기 후 끌려가 린치를 당해야 하는 불안감 속에서도 버디 퍼트를 우겨 넣은 골퍼. 야구의 재키 로빈슨 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도 물러서지 않은 용기 있는 사람. 마스터스에 끝내 초청을 받지 못한 사람. 그래서 오거스타 내셔널이 KKK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직인 걸 증명한 사람. 그리고‘그냥 공이나 치게 해달라’는 책을 낸 사람. 타이거 우즈보다 골프를 사랑했을 것 같은 사람, 최경주와 박세리를 있게 해준 개척자, 편히 잠드소서.
그들은 갔지만, 그들의 정신은 남기를 바란다.
이젠 영혼이 된 남의 나라의 인물들에 대해 쓰는 이유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선수로서의 마지막을 곧 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골프가 아닌 농구계 사람들에 대해서 쓴 이유는 농구 대통령 허재의 불명예 하야와 경기 중 선수 입에 테이프를 붙이게 한 감독의 500승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kar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