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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골프 때문에 금연 어렵다구요?

02.16 08:34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는 담배의 유해 사실이 알려진 후 깨끗이 담배를 끊었다. 하루 3갑을 피우던 최경주도 담배를 끊은 후 성적이 좋아졌다. [일러스트 이경아]

지금으로부터 102년 전인 1913년 US오픈. 캐디피가 없어 키가 캐디백만한 열 살짜리 꼬마를 캐디로 쓴 스무 살의 스포츠용품점 점원 프랜시스 위멧이 두 골리앗과 연장전 대결을 펼쳤다.

골리앗은 영국에서 온 해리 바든과 테드 레이였다. 특히 바든은 위멧의 우상이었다. 바든은 디 오픈 여섯 차례 챔피언이며, 유러피언투어와 PGA 투어의 최저타상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그가 고안한 바든 그립은 현대 골퍼의 90% 이상이 쓴다.

그만큼 뛰어난 골퍼였다. 또 하나의 골리앗 테드 레이는 동시대 다른 선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타를 날리는 괴력의 사나이였다. 함께 경기하면 상대를 주눅 들게 했고 1912년 디 오픈 우승, 13년 준우승했다.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원정 온 두 선수는 막강이었다. US오픈을 앞두고 열린 이벤트 대회에서 미국의 최고 프로 선수들을 아이 손목 비틀 듯 제압했다. 그러나 당연히 우승할 것으로 예상했던 US오픈에선 풋내기 아마추어 위멧을 상대로 연장까지 치러야 했다.

위멧은 연장전 후반 들어 승리를 확신한다. 바든이 들고 있는 담배 연기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알았고, 그의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13년 US오픈을 기술한 마크 프로스트의 라는 책의 백미는 이 흔들리는 담배 부분인 것 같다.


책은 2005년에 같은 이름의 영화(국내에선 ‘지상 최고의 게임’)로도 제작됐다. 트랜스포머의 주연을 맡았던 샤이아 라보프가 위멧의 역할을 맡았는데 담배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카드나 화투를 할 때 상대가 담배를 꺼내면 뭔가 초조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프장에서도 담배를 꺼내 무는 건 손톱을 물어뜯는 것처럼 마음의 동요가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멘털 스포츠인 골프에서 담배는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골프의 성인’이라 추앙받는 보비 존스는 중요한 순간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곤 했다. 벤 호건, 아널드 파머, 샘 스니드 등은 끽연가였던 것은 물론이고 담배 광고에 모델로 나왔다. 담배 회사들은 스타 프로골퍼를 내세워 ‘골퍼들은 당연히 담배를 피워야 한다’고 설득했다.



아직도 담배는 멋진 구석이 있다. 미겔 앙헬 히메네스가 시가를 물고 스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낭만이 느껴진다. 앙헬 카브레라는 2006년 US오픈 우승 당시 "왜 코스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다른 선수들은 심리분석가를 만난다는데 나는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 만나서 밤에 꾼 악몽 얘기하는 쩨쩨한 샌님들보다 카브레라가 훨씬 멋져 보인다.

금연이 화두다. 담뱃값이 올라서 이참에 끝내겠다고 하는데 쉽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음주시보다 골프장에서 담배의 유혹이 훨씬 강렬하다. 골프는 매우 민감한 스포츠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특히 내기를 할 때는 더 그렇다. 잘 맞으면 기분 좋아서, 잘 못 맞으면 기분이 나빠서, 중요한 샷을 하기 전에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려 담배가 필요하다.

찰스 다윈의 손자로 뛰어난 골프 기자인 버나드 다윈은 골프장 담배는 5가지 타입이 있다고 했다. 첫 티샷 전, 더블이나 트리플보기를 한 후, 여유 있게 앞서다 쫓기기 시작할 때, 9홀이 끝난 후, 승리했을 때 등이다.

그러나 그 담배도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는 담배의 유해 사실이 알려진 후 깨끗이 담배를 끊었다. 타이거 우즈도 도박과 여색을 즐겼지만 담배를 입에 대지는 않는다.

최경주는 잘 맞으면 하루 두 갑 반, 안 맞으면 세 갑을 피우는 골초였다고 하는데 이미 15년 전 끊었다. 계기는 이렇다. PGA 투어에서 한 주에 두 개 대회가 동시에 열리는 일이 있다. 뛰어난 선수들은 상금도 크고 컷 탈락도 없으며 출전선수도 많지 않은 월드챔피언십에 나가고 나머지 선수들은 같은 기간 열리는 B급 대회에 나간다.

최경주는 그 해에 B급 대회인 투산 오픈에 출전했다. “TV로 월드챔피언십 중계를 보면서 저 선수들과 내가 뭐가 다른지 생각해 봤다. 그들은 나보다 공을 잘 치고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 다음날이 아내 생일이어서 선물로 금연을 결심했다. 갖고 있던 말보로 담배 16갑과 15개비, 그리고 새 라이터를 봉지에 담아 호텔 밖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쉽지 않았다. 최경주는 "골프장에서 금단현상을 이기려 페어웨이 나무를 잡고 씨름을 했고, 그린에 올라가면 해롱해롱했다. 아내 몰래 하루 세 개비 정도 피웠다. 냄새로 알 텐데 아내는 말을 안 했다. 고맙게 생각한다. 8개월 만에 완전히 끊었다. 담배를 끊고 나니 공이 쭉쭉 나가더라. 이제는 거리가 줄어들까봐 담배를 못 피우겠다.”

담배가 긴장을 줄여주기 때문에 올림픽 등에 금지약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기각됐다. 효과가 없다고 한다. 담배의 효과라면 암 발생의 위험을 늘리는 것뿐이라고 한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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