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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안 아프다" 자기최면 화 불렀다.

02.12 09:20

타이거 우즈[골프파일]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8월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최종라운드에서 기권했다. 그는 “2번 홀의 심한 경사지에서 샷을 한 후 몸이 벙커에 빠졌는데 이후 통증이 나타났고 사라지지 않았다. 허리 전체가 아프다. 어떤 상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즈는 기권한 후 SUV 자동차 트렁크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으려 하다가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캐디의 도움을 받고 겨우 스파이크를 벗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경기한 버바 왓슨은 “우즈가 파 3인 5번 홀에서 65야드나 짧은 샷을 치는 등 허리가 아픈 걸 감안해도 우즈 답지 않은 샷이 나왔다”고 했다.

 문제는 심각해 보였다. 우즈는 지난 해 3월 열린 혼다 클래식에서도 허리 때문에 경기 중 기권한 후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마스터스와 US오픈에 참가하지 못했다.

 브리지스톤 직후 열리는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 못나갈거라고 예상됐다. 로리 매킬로이는 BBC에 “안타깝지만 시즌을 마감하더라도 100% 건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 그는 “통증은 없다”고 했다. 그를 기권하게 한 허리 부상에 대해서는 “엉치뼈가 페어웨이 벙커에 빠질 때 탈구됐다. 뼈를 원 위치로 복구시키고 나서는 아무런 통증이 없다. 경련은 수술 부위와는 관계없고 진통제가 필요 없이 소염제만 복용할 정도로 통증이 사라졌다. 원래의 스피드와 파워를 내고 있다”고 했다.

 다시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분명히 있다. 벙커에 빠지면 안 된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우즈는 PGA 챔피언십에서 하위권으로 컷탈락했다. 경기 중 허리 때문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본 우즈의 과거 코치 부치 하먼은 “전반 9홀 내내 그의 허리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몸으로 무리하게 후반 9홀까지 경기를 치른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도 우즈는 라이더컵 캡틴인 톰 왓슨에게 허리가 아프지 않고, 뽑아준다면 출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가 철회했다.

여기서 우즈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우즈는 지난 해 PGA 챔피언십에 나올 때 허리가 아팠는가, 아프지 않았는가. 그를 기권하게 만든 허리 통증은 단순 탈구였는가, 아니면 수술과 관계있는 부상이었는가. 수술과 관계있는 부상이었다면 우즈는 그걸 알았는가, 몰랐는가.

 스포츠 스타는 속이기의 명수다. 축구 선수와 농구 선수는 손과 발, 눈의 움직임 등으로 상대 수비를 속인다. 야구 투수도 직구를 던지는 척 상대를 속이고 변화구를 던진다. 큰 대회를 앞두고 아주 긴장했는데도 “편하게 잠 잘 잤다. 이길 자신이 있다”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골프에서도 흔히 나온다. 공이 잘 안 맞는데도 기자회견에서는 “아주 컨디션이 좋았는데 퍼트가 조금 안 들어갔다” 혹은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어 OB가 났다”고 이야기하는 선수를 종종 본다.

 그 말들이 모두 거짓말은 아니다. 그들은 때론 자신까지도 속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얘기하면서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우즈는 2013년과 14년, 15년 모두 “나는 더 강해졌고 더 빨라졌고 폭발적이 됐다. 그 동안 부상 속에 살았는데 이제 그 부상을 모두 털어버렸으니 좋은 성적이 날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자기 최면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우즈는 초조하다. 그는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18승이라는 평생의 목표를 쫓아가야 한다. 스폰서에 대한 의무 때문에 몸이 아픈데도 나가야 할 대회가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퀵큰론스 내셔널이 그런 대회였다. 3월 말일 수술을 하고 나서 첫 출전 대회였다. 우즈의 자선재단에 낼 기금을 만들기 위해 만든 대회이고, 우즈가 출전한다는 명목으로 스폰서를 끌어왔기 때문에 무리해서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우즈는 “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을까, 거짓말이었을까, 자기최면이었을까.

대회 중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면 우즈는 일찌감치 경기를 그만뒀어야 한다. 브리지스톤에서 허리를 삐끗한 다음 우즈는 6홀을 더 돈 후에야 경기를 포기했다. 우즈로선 우승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경기를 끝마친다 해도 사실상 얻을 게 없었다. 일부 팬들이 “우승을 못할 것 같으니까 경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빈정대겠지만 큰일을 위해서는 그런 소리에는 귀를 막아야 한다. 관중들의 얘기를 경청하면 나중에 코스가 아니라 관중석에서 경기를 봐야 한다.

우즈는 그냥 경련이라고 했지만 건강한 허리에 경련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주 열린 대회에서 우즈는 안개 때문에 경기가 지연되면서 몸을 제대로 풀지 못해 아프다고 했지만 똑같은 조건에서 아픈 선수는 우즈 뿐이었다.

지난해 브리지스톤 대회를 기준으로 보면 수술 후 4개월도 안됐고 허리에서 이상 신호가 오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경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PGA 챔피언십에서도 허리 때문에 생긴 통증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끝까지 경기를 마친 것은 무모해 보인다.

 우즈는 2008년 US오픈에서 심각한 무릎부상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연장 18홀과 재연장까지 총 91개홀을 돌면서 경기했고 우승했다. 우즈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는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긴 수술과 부상 등으로 우즈는 이후 메이저 우승을 못했다. 장타를 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그러다 부상을 당하는 것을 스포츠 스타의 훈장 정도로 생각했다.

 우즈는 2010년 이후 여섯 번째 기권을 했다. 최근 8개 대회에서 세 번째 기권이다. 공이 잘 맞지 않거나 기분이 나쁘면 그냥 집에 가곤 했던 존 댈리를 제외하곤 가장 많이 기권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권하려고 해서 나온 기권이 아니고 기권을 하지 않으려다 생긴 기권이다. 몸에 무리가 가는 강력한 스윙-이로 인한 부상-수술-무리한 출전-부상 재발-수술의 패턴이 계속되면서 생긴 결과다.

갈 길은 바쁘다. 해는 저물어 오고 로리 매킬로이는 파죽지세로 쫓아온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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