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싸움닭' 계보 잇는 새로운 영웅 가르시아
04.11 10:05

지난 1999년 4월 마스터스가 열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19세의 아마추어 세르히오 가르시아(37·스페인)는 인터뷰실인 버틀러 캐빈(Butler Cabin)에서 그린 재킷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가르시아는 처음으로 출전한 마스터스에서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최고 성적(공동 38위)을 냈다. 챔피언이 입장하는 순간 가르시아는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챔피언은 스페인 출신이자 그의 우상인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51)이었다. 가르시아는 선배 올라사발의 우승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이 코스에서 메이저 우승을 하고 말겠다”라고 의욕을 다졌다.
그로부터 18년이 흘렀다. 가르시아는 10일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끝난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마침내 ‘메이저 무승 징크스’에서 탈출했다. 합계 9언더파로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저스틴 로즈(37·잉글랜드)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생애 첫 메이저 정상에 올랐다.
그는 74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메이저 우승의 꿈을 이뤘다. 그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준우승 4차례를 포함해 톱10에 22차례나 들었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9년 대회 당시 올라사발은 또다른 ‘스페인의 전설’ 세베 바예스테로스로부터 “당신이 최고 선수”라는 응원 메시지를 받고 두번째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했다. 가르시아도 우상인 고(故) 바예스테로스를 기리는 마음으로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 경쟁을 펼쳤다. 마침 이날이 바예스테로스의 60번째 생일이었다.
가르시아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싸움닭’으로 불린 두 선배처럼 치열하게 물고 늘어졌다. 바예스테로스와 올라사발은 각각 1980년과 1999년 마스터스에서 54홀 리드를 끝까지 지켜 우승까지 차지한 기억이 있다. 6언더파 공동 선두로 출발한 가르시아는 10번, 11번 홀 연속 보기로 로즈와 2타 차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승부 근성은 후반 막판에 불을 뿜었다. 14번 홀 버디로 1타 차로 압박한 가르시아는 15번 홀(파5)에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드라이버로 330야드를 보낸 가르시아는 192야드를 남겨두고 8번 아이언으로 2온을 시도했다. 주특기인 페이드 샷으로 때린 공은 핀을 강타할 정도로 정교했다. 기세가 오른 가르시아는 4.27m 이글 퍼트를 집어넣으며 포효했다. 자신의 마스터스 452홀 만에 나온 첫 이글이었다. 대회 최종 라운드 15번 홀에서 이글을 기록했던 마지막 주인공이 바로 1994년 챔피언 올라사발이었다.
로즈가 15번, 16번 홀 연속 버디를 낚아 달아났지만 다음 홀에서 보기를 적어 다시 가르시아와 9언더파 동타가 됐다. 둘은 마지막 18번 홀에서 3m 이내 버디 기회를 잡았지만 나란히 놓쳐 연장 승부를 벌이게 됐다. 18번 홀에서 진행된 연장 첫 홀에서 가르시아는 로즈가 티샷 실수로 보기를 한 탓에 여유가 있었지만 4m 버디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자축했다.
3세 때 투어 프로였던 아버지 빅터 가르시아에게 골프를 배웠던 가르시아는 마스터스 우승으로 뒤늦게 골프인생의 꽃을 활짝 피웠다. 그는 1996년 16세의 나이로 디 오픈에 출전하면서 ‘골프 신동’으로 주목 받았다. 1999년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미국)와 우승 경쟁을 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가르시아는 19세258일로 역대 라이더컵 최연소 출전 선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바예스테로스와 올라사발이 함께 호흡을 맞춰 11승2무2패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미국팀 제압에 앞장섰듯이 가르시아도 라이더 컵에서 19승7무11패로 높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 마스터스 우승 후 가르시아는 “세베가 여기서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하늘을 가리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빌리 호셀(미국)은 가르시아 우승을 축하하며 “세베가 천국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글을 남겼다.
가르시아 옆에는 피앙세가 있었다. 숱한 스타들과 염문설을 뿌렸던 가르시아는 이제 한 여자에게 정착해 심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가르시아는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 다니엘라 한투호바(슬로바키아) 그리고 그렉 노먼의 딸과도 교제한 바 있다. 가르시아는 올해 디 오픈이 끝난 뒤 미국의 골프채널 리포터 출신 앤젤라 애킨스(31)와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5년 말부터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놀라운 건 약혼자 애킨스가 두 번째 결혼이라는 것이다. 애킨스는 전 골프 선수 로스 하먼과 첫 번째 결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애킨스가 ‘돌싱’이라는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는 “골프 외적으로 모든 것들이 바르게 정렬돼 있다면 당신은 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마음 역시 차분해진다. 애킨스가 이런 부분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애킨스는 골프 선수 출신이다. 고교 시절 10차례나 우승을 했던 기록이 있고, 텍사스기독대학의 골프팀에서도 활동한 바 있다.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에 편입해 언론을 전공했고, 2015년부터 골프채널에서 리포터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르시아도 그렇듯 애킨스의 아버지와 조카 등도 풋볼 선수 출신이다. ‘스포츠 가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여러 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가르시아는 “애킨스 가족들의 승부욕이 대단하다. 함께 라운드를 하면 자극을 받고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