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군대 가서도 빗자루질로 스윙 감각 잊지 않을 것”
11.13 10:38

"한 샷, 한 샷 정성을 다해서 쳤어요. 그런데 평소대로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안 되네요."
11일 전남 보성의 보성골프장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 시즌 최종전 카이도코리아 투어 챔피언십 2라운드. 이날 1오버파 73타를 친 김대현(28·캘러웨이)은 컷 탈락 기준인 이븐파 144타에 턱걸이한 뒤 너털웃음을 지었다.
‘원조 장타자’ 김대현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한다. 김대현은 "입대 전 마지막 대회라고 생각하니까 홀 하나하나에 애착을 느꼈다. 그래서 티펙을 꽂을 때도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고 말했다.그는 이날 경기 시간이 더 걸렸다. 자신의 루틴이 깨진 것 같다고 했다. 후반에 아웃오브바운스(OB)가 3번이나 나왔다. 김대현은 “마지막 대회에서 컷 탈락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놨다.
20대 남자 선수들에게 병역은 가장 큰 숙제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달리는 나이에 2년 공백은 그 자체로 커다란 공포다. 제대 후 투어 생활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입대시기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 김대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대현도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군 문제를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입대를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그는 “10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던 투어 생활을 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하는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알찬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며 웃었다.
최고의 해,그리고 최악의 슬럼프
지난 2007년 KPGA투어에 데뷔한 김대현은 화끈한 장타를 날리며 주목 받았다. 2007년부터 5년 연속 장타왕에 올랐다.2010년에는 KPGA투어 상금왕도 차지했다. 드라이버샷 평균 거리 300야드 시대를 처음 연 선수가 김대현(2009년 평균 303.682야드)이었다. 그는 "2010년 매경오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경태 형을 이기고 우승했다. 또 그해 상금왕에 올랐다. 정말 거침없이 플레이를 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김대현은 2011년 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가 왼쪽 어깨 회전근개 파열 부상을 입었다. 부상은 긴 슬럼프로 이어졌다. 2013년 미국프로골프협회(PGA)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에 도전했지만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그리고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4년 김대현은 상금 순위 36위에 그쳤다. 시련의 시간을 보내는 그를 두고 "김대현은 이제 끝났다", "거리도 예전 같지 않다"는 등의 악평이 쏟아졌다. 김대현은 "좋지 않은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이런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골프를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12번은 넘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김대현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아내 강명진(36)이었다. 두 사람은 2014년 7월 처음 만났다. 지인이 불러 나간 라운드에 강씨가 있었다. 김대현은 "그때 아내가 공을 너무 못 쳤다. 라운드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레슨을 하고 있더라. 그게 미안했는지 아내가 '밥을 한 번 사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다"고 말했다.
아내 강씨는 김대현보다 여덟 살 많다. 처음부터 둘 사이에는 단단한 사랑과 신뢰가 있었지만 현실의 장벽이 꽤 높았다. 특히 김대현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그는 "나이 차가 너무 난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 한동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그러나 김대현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나이가 있는 만큼 아내는 나를 잘 이끌어 주고 편안하게 대해준다. 아내를 만난 뒤 골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골프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김대현을 잘 아는 코치이자 매니저다. 김대현이 코스에서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면 강씨가 두 손으로 '천천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김대현이 컷 탈락을 하고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돌아오면 "당신 뒤에는 내가 있다. 걱정하지 말고 과감하게 쳐라. 뭐가 겁나서 쩔쩔 매면서 치느냐"고 쓴소리도 했다. 김대현은 "아내는 나보다 더 강한 여자다. 현명하고 생각이 깊다. 아내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빗자루질로 스윙 감각 잊지 않을 것”
김대현은 지난해 9월 매일유업오픈에서 우승했다. 통산 네 번째 우승까지 3년이나 걸렸다. 슬럼프가 길어지자 훈련이 귀찮게 느껴진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아내가 방에 매트를 깔아놓고 아예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는 “무서운 아내 덕분에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우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웃었다.
김대현은 지난 6월 혼인신고를 하고 강씨와 법적인 부부가 됐다. 서울 마포구에 둘만의 보금자리도 꾸몄다. 김대현은 "내가 슬럼프를 떨치고 우승하는 걸 보고 부모님도 조금씩 마음을 여셨다. 혼인신고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입대를 앞두고 결혼식을 올릴 상황이 되지 않아 혼인신고부터 했다는 것이다.그는 "내가 할 일을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편안하게 입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결혼식은 제대 후에 근사하게 치러줄 계획"이라고 했다.
12월 중순 입대 예정인 김대현은 군 생활이 골프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김대현은 "어린 나이에 프로생활을 시작해 10년 동안 앞만 보고 뛰었다. 그러나 아직도 골프를 잘 모르겠다. 골프는 끝이 없는 운동인 것 같다"며 "20대에는 혈기왕성하게 골프를 했지만 군 제대 후 서른 살이 되면 내 골프도 성숙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현은 군 입대를 또 다른 도전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제대 후 1년도 되지 않은 (윤)정호가 얼마 전 DGB금융그룹 대구경북오픈 우승을 하는 모습을 봤다. 나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김대현은 군대에서 클럽을 잡을 순 없겠지만 윤정호 처럼 빗자루질을 열심히 해서 스윙 감각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다.그는 "정호가 군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덕분에 비거리를 25야드를 늘렸다고 하더라. 나도 열심히 몸을 만들어서 장타왕에 다시 도전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대현은 수많은 실패를 겪는 동안 더 단단해졌다. 강씨와의 결혼이 그렇게 만들었고, 군 입대가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다. 2년 뒤 김대현은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 같다.
보성=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