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위 도약 김시우 "보물 1호는 아직 노트북"
10.07 17:27
“아직까지 보물 1호는 노트북이에요.”
세계 최고의 무대 정상을 밟은 김시우(21·CJ대한통운)에게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8월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기에 특별한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필드에선 강한 카리스마를 뽐내지만 일상에서의 김시우는 또래 대학생들과 비슷했다.
7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 경기가 열린 경기 용인 88골프장에서 만난 김시우는 “축구 게임을 좋아하는데 노트북이 필수”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과 게임은 투어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걸그룹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다. 김시우는 “배우 문채원이 이상형에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웃었다.
사실 김시우의 보물 1호는 곧 바뀔 예정이다. 첫 승의 환희와 영광이 담긴 윈덤 챔피언십 트로피다. 모형 우승트로피 제작에도 2~3개월이 걸려 김시우에게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김시우는 “골프를 시작하면서 목표로 삼은 꿈을 이룬 대회”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시우는 어릴 때부터 꿈이 컸다. PGA 투어 우승을 목표로 고교 때 미국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2012년 17세5개월6일의 역대 최연소 나이로 PGA 퀄리파잉(Q) 스쿨을 통과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3년 나이 제한(만 18세)에 걸려 제 기량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웹닷컴(2부) 투어로 떨어졌다.
당시 10대였던 김시우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웹닷컴 투어 초반 8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하면서 나갈 수 있는 대회도 없었다. 그는 “월요 예선전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2~3시간씩 이동해야 했다. 골프가 하기 싫었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어린 김시우를 잡아준 건 아버지였다. 김시우는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괜찮다’고 보듬어준 아버지 때문에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로 멘털도 좋아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2부에서 미국 전역을 누비며 2년 고생한 뒤 올해 1부 투어로 올라왔지만 ‘텃세’를 겪었다. 지난 1월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오픈에서 상위권에 오르자 현지 언론에서 ‘김시우의 에이밍 방법’에 태클을 걸었다. 어드레스 시 캐디가 뒤에서 에이밍이 맞는지 한 번 확인하고선 티샷하는 과정을 꼬집었다. 김시우는 “약간 텃세처럼 느껴졌다. 이후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쳤는데 잘 맞았다”고 고백했다.
PGA 투어 8승의 최경주(46·SK텔레콤)는 자신의 기록을 깰 강력한 후보로 김시우를 꼽았다. "310~320야드의 장타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어린 선수"라고 평했다. 김시우는 "기록은 열심히 하다 보면 따라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랭킹 55위인 김시우는 로리 매킬로이(27·북아일랜드), 조던 스피스(23·미국)와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게 목표다. 그는 "세계 정상급 선수와 경쟁하려면 거리부터 10~15야드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2년 안에 우승을 한 번 더 하고, '전설' 타이거 우즈와도 라운드를 하고 싶다. 메이저 중 마스터스 우승이 가장 욕심 난다"고 말했다. 올 시즌 페덱스컵 17위를 차지한 김시우는 12일께 발표 예정인 PGA 투어 신인왕의 강력한 후보다.
김시우는 이날 버디 7개와 보기 3개를 묶어 4타를 줄여 6언더파 공동 9위에 올랐다.
김시우는 이날도 13번 홀(파5)에서 아웃오브바운즈(OB)를 기록했다. 그는 “첫 날은 좌측 오늘은 우측으로 OB가 났다. 양쪽 다 OB 말뚝이 있어 압박감이 있는 것 같다”며 “페어웨이를 잘지키는 게 중요하다. 3라운드에서 5~6개 정도를 줄여야 우승권에 진입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승 스코어는 현재 컨디션으로 17~18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진재가 9언더파로 단독 선두다.
용인=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