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박인비 "메이저 대회보다 특별한 우승"
08.21 02:00

박인비가 116년 만에 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박인비는 21일(한국시간) 끝난 올림픽 여자 골프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를 쳤다. 합계 16언더파로 2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5타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인비는 평소 인터뷰에서 표정이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마지막 퍼트를 넣고 나선 두 손을 번쩍 들고 그 자리에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에선 목소리가 흔들렸고, 살짝 울먹이기도 했다.
4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에 올림픽 금메달까지 추가한 박인비는 여자 골프 최초의 '골든 슬래머'가 됐다.
다음은 박인비와 일문일답.
-금메달을 딴 소감은?
"올해 매우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긴 여정이었다. 골프가 이렇게 긴 게임인지 생각도 못했다. 이번 올림픽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금메달이라는)좋은 보상을 받게 돼서 기쁘고 응원해주신 한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인데?
"다른 메이저 대회 우승보다 이번 우승은 더 특별한다. 최근 (부상 때문에)힘든 시간을 보냈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시간도 많았다. 그래서 더 값진 우승인 것 같고, 더 기쁘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와 우승하는 것만큼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다."
-금메달 확정 후 울지는 않았나?
원래 눈물이 없다. 울컥한 것은 있는데 눈물은 안 난다. 눈물샘이 말랐는지 최근에 울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올해 2월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운 것이 가장 최근 눈물인 것 같다.
-부상으로 출전이 불확실했다. 마음 고생이 심했나?
"나 자신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기간도 길었다. 용기를 내서 나오기로 결정했을 때도 생각보다 비난을 많이 받았다.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서 후회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걸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항상 준비에 따른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운 좋게도 이번 대회 좋은 결과가 나와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우승을 언제 확신했나?
시작이 좋았기 때문에 전반에 어느 정도 생각은 했다. 하지만 들뜨면 안 되기 때문에 가라앉히려고 노력했고, 10번 홀에서 보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침착해졌다. 우승을 확신한 것은 17번 홀에서 버디를 하면서였다. 그때는 '이제는 이상한 짓을 해도 우승하겠구나' 싶었다.
-한국 팬들의 응원도 대단했는데?
같이 경기한 리디아 고가 '한국인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오늘 결과는 혼자서 한 일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힘이 모여서 전달된 결과다. 응원을 열심히 해주셔서 홀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왼손 엄지손가락 부상은 다 나았나?
통증은 계속 있지만 정도의 차이다. 이번 대회에서 부상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부상 때문에 거리도 줄고, 예상 밖의 미스 샷도 나온 것은 사실이다. 빨리 완치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하고 싶은 것이 있나?
올림픽 외에 생각한 것이 없어서 다음은 모르겠다. 완벽한 컨디션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한 달간 긴장하면서 몸과 마음을 혹사했기 때문에 몸에 남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도움을 준 사람은?
역시 가족이다. 가족이 내가 올림픽에 나가기를 많이 바랐다. 올림픽 출전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옆에서 마음 먹도록 도와준 존재가 가족이다. 욕을 먹을까 봐 올림픽을 포기하는 것도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부딪히더라도 덜 아프게 부딪히기 위해 한 달간 준비를 열심히 했다.
-박인비에게 태극마크의 의미는?
무한한 힘을 내게 해주는 에너지인 것 같다. 태극마크라는 것은 누구나 비슷할 거다.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되니 더 박수 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은 압박감 속에 있었겠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이번 주 오기 전에 수영 경기를 보는데 출발하려고 늘어서 있을 때 그들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가 티박스에 서면 저런 기분이겠지?’ 그래서 사실 괴로웠다. 저런 기분을 느끼면서 72홀을 돌 생각에 두려웠다. 하지만 마지막 티샷이 끝나고 그 긴장감이 끝나서 좋았고, 태극마크는 모든 선수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주는 것 같다.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했고, 더 잘하고 싶다 보니 실수도 나오고 긴장도 됐지만 나라를 대표해 나가는 의미는 크다.
-한 달 전부터 금메달을 거는 순간까지 최고의 순간이 있었나?
올림픽 출전 결정 이후에도 번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연습라운드를 하면서 미스 샷이 나오면 예민해졌다. 실수가 나올 때마다 '이러면 올림픽에 가면 안돼.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이 '할 수 있다'고 되뇌었다. 한 달 사이에 그러면서 성장한 것 같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두 가지다. 처음은 내 자신에게 끝도 없이 줬던 용기가 박수 쳐 줄 부분인 것 같다. 두 번째는 금메달 딴 것. 용기가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다.
-앞으로 또 목표가 있다면?
아직 모르겠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골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때까지 선수를 한다면 좋은 목표가 될 것 같다.
JTBC골프 디지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