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색 바꾼다, 최경주 “난 페인트 칠하는 사람”
07.29 02:38
“병훈이 팔뚝이 내 종아리 굵기 잖아요.”
27일(현지시간) 아침 일찍, PGA 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뉴저지주 스프링필드의 발투스롤 골프장 10번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최경주(46·SK텔레콤)와 안병훈(25·CJ), 왕정훈(21)이 만났다. 최경주는 한국의 올림픽 남자 골프 감독이고 나머지 둘은 선수로 참가한다. 세 선수의 시즌 PGA 챔피언십 마지막 연습라운드이자 올림픽을 대비한 최경주 감독의 지도 라운드이기도 하다.
전날 이벤트 대회로 열린 장타대회 얘기가 나왔다. 안병훈이 347야드를 쳐서 1등을 했다. 왕정훈은 320야드로 10등이었다.
안병훈은 “세게 친 게 아니고 평소처럼 쳤다. 잘 맞았고 약간 뒤바람이 불어서 좀 더 나갔다”고 우쭐했다. 안병훈에 2야드 차로 2위를 한 로리 맥킬로이(27.북아일랜드)가 “나는 바람 안 부는 오전에 쳤다”고 하더라고 전했더니 안병훈은 “그게 다 핑계”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웃으며 “병훈이 공 치면 어떤 때는 까마득하게 나가 공이 보이지도 않는다. 500야드도 친다”고 과장해서 칭찬했다.
왕정훈은 “나도 세게 친 게 아니다. 앞서 친 선수들이 너무 멀리 쳐서 나는 상위권에 오를 기회가 없어 평소대로 쳤는데 좀 잘 맞았다”고 했다.
한국 올림픽팀 선수들의 거리는 어디 가도 뒤지지 않았다. PGA 챔피언십이 열리는 발투스롤 골프장 431야드의 파 4, 11번 홀에서 안병훈은 두 번째 샷을 약 80야드를 남겨뒀다. 역시 파 4인 451야드 13번 홀에서 최경주는 6번 아이언을 잡았는데, 왕정훈은 8번, 안병훈은 9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했다. 최경주는 “너희처럼 멀리 치면 골프 참 쉽겠다. 올림픽에서 거리는 걱정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올림픽에 나가는 두 선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경주는 부족한 점도 말했다. 그는 “왕정훈은 바람이 불 때도 안정적인 아이언을 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안병훈은 스코어 관리를 잘 해야 하고 쇼트게임에서 약간 발전의 여지가 있다. 이틀 전 연습라운드를 하면서 경기력을 봤고 어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나의 의견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골프는 매우 민감한 스포츠여서 스윙을 섣불리 고치지 않는다. 감독이라고 뭔가를 바꾸라고 강요하기도 어렵다.
최경주는 “건물을 뜯어 고칠 수는 없다. 그럴 시간이 없다.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안병훈은 부담을 갖지 않기 위해서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도, 올림픽도 평소 대회와 똑같이 생각하겠다고 했다.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 탁구 스타 출신의 아버지 안재형(51)씨와 올림픽에 관해 얘기도 않는다고 했다.
안병훈 보다 왕정훈이 감독의 ‘건의’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왕정훈은 올 시즌 유러피언투어에서 2승을 거두면서 한국 남자 골프의 샛별로 떴다. 유럽 투어에서 활동해 미국에서 뛰는 최경주를 만난 건 처음이다. 그는 “처음 만나 들어본 최 프로님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최경주는 연습라운드를 하면서 두 선수의 샷도 다 꿰고 있었다. 15번 홀에서 왕정훈의 아이언샷이 오른쪽으로 빗나가자 그립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최경주는 “그립이 도톰하게 튀어나오면 뭔가 잘 못 됐다는 것”이라면서 페어웨이에서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왕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경주는 올림픽이 설렌다. 어릴 적 역도선수를 할 때 올림픽 출전이 꿈이었다고 했다. “역도를 할 때 나와 나이가 비슷한 전병관(47)씨는 역도의 신이었다. 내가 역도 선수로 50m 갈 때 그는 100m를 갔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전병관씨도 만나고 다른 종목 선수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도 보고 싶다. 개회식에도 참가해 단장 옆에 맨 앞에서 행진하겠다. 중간에 들어가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카 바이러스 위험에 대해 최경주는 “그 때 되면 날이 차가워져 모기 주둥이가 녹아 버렸을 것”이라고 하면서 “주사를 잘 맞고 서류도 꼭 챙겨가라”고 조언했다.
최경주는 “우리 선수 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가 있지만 골프는 컨디션 좋으면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우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또 “두 선수 조합이 좋아 개인전 보다는 포섬 경기 같은 것을 했다면 메달 확률이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선수들을 재미있게 해주려 했다. 그는 “공이 디봇에 들어가는 등 위기에 처했을 때는 선수 교체해서 내가 쳐주고 싶다. 모든 구기 종목에 선수 교체가 있고 그 한순간을 위해 준비한 선수가 있는데 골프는 왜 없느냐”고 농담을 했다. 안병훈이 “라운드 당 멀리건도 2개씩 줘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다. 최경주는 “내가 운영위원회에 들어가서 규정을 바꿔야겠다”고 했다.
이번 올림픽은 개인전이어서 골프 감독의 역할이 많지는 않다. 최경주는 “샷에 도움을 줄 수 없다. 드라이빙 레인지를 여러 가지 샷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잡아주고 연습라운드 누가 먼저 나가느냐 같은 상대와의 기 싸움에 방패막이로 나서겠다”고 했다.
스프링필드=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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