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훈 스코티시 오픈 우승하면 올림픽 참가
07.07 02:04

왕정훈은 잠이 오지 않아 새벽부터 코스에 나섰다.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의 아침엔 찬 바람이 분다. 약 2달 만에 프로암에 나선 그는 싸늘한 날씨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1번 홀 티샷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햇살이 비추면서 추위도 가셨다.
6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의 캐슬 스튜어트 골프장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애버딘 애셋 스코티시 오픈 프로암에 참가한 왕정훈을 만났다. 지난 5월 BMW PGA챔피언십에서 프로암에 나선 이후 오랜만에 프로암에 나선 왕정훈은 밝은 얼굴로 “아마추어 분들과 즐겁게 라운드 하겠다”고 말했다.
링크스 코스인 캐슬 스튜어트 골프장은 첫 4개 홀이 해안가에 바짝 붙어있다.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백9 홀들도 비슷하다. 강풍이 부는 것은 물론이고 그린 뒤편이 대부분 해안가의 모래사장이다. 언듈레이션도 매우 심해 자칫 퍼트 실수가 나왔다가는 그대로 그린을 벗어나 굴러 떨어질 수 있다.
왕정훈은 전날 후반 9홀을 돌며 코스 상태를 점검했다. 하지만 전반 9개 홀은 프로암 경기를 하면서 처음 돌아봤다. 왕정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코스를 계속 살폈고, 그린에서 퍼트를 마치고 나서도 2~3분씩 남아 공을 굴려보고, 그린 가장자리를 맴돌며 주변 상태를 확인했다.
링크스 코스는 왕정훈에게 생소하다. 올해 US오픈 퀄리파잉이 열린 잉글랜드 서리의 월튼 히스 골프 코스가 그의 첫 링크스 코스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코스는 링크스 코스의 특징을 딴 인랜드 코스다. 이번 스코티시 오픈이 사실상 첫 경험인 셈이다.
전반 홀들에서 그린을 둘러본 그는 “난이도는 전반적으로 평이하다. 그린 스피드는 느린 편인데 언듈레이션이 심하다. 퍼트가 관건일 것 같은데 페어웨이가 좁은 홀도 많다. 샷과 퍼트 모두 정확하게 구사해야 한다”며 “1라운드 때도 그린이 느릴 것으로 예상돼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린 스피드가 빨라진다면 매우 어려운 라운드가 될 것이고, 강한 바람도 변수다. 적응만 빨리 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맑고 바람 없는 날씨에 왕정훈은 9번 홀까지 버디 3개를 잡으면서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왕정훈은 지난 주 100회를 맞은 프랑스 오픈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최종라운드 공동 2위로 출발했지만 7타를 잃으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왕정훈은 “컨디션은 괜찮았는데 경기가 잘 안됐다. 운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초반에 조금만 흔들렸으면 금방 추스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 크게 무너졌다. 2번 홀 티샷이 해저드에 빠져서 더블 보기를 기록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보기만 적었어도...”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의 캐디 고동우 씨는 “러프가 길어서 페어웨이를 못 지키면 어려운 코스였는데 최종라운드 초반엔 잘 치고도 자꾸 러프로 빠졌다.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버디 찬스도 꽤 있었는데 이번엔 퍼트가 안되더라. 파 세이브 기회에서도 퍼트가 빗나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왕정훈에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그 대회에서 우승한 통차이 자이디(태국)와 최종라운드 마지막 조에서 경기했다. 유러피언투어를 뛰면서 ‘저 선수 대단하다’라고 느낀 적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 지난 주 자이디의 플레이는 배울 점이 많았다. 절대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노련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대단했다”라고 했다.
왕정훈은 디오픈을 2주 앞두고 세계 랭킹으로 출전권을 얻었다. 본인도 모르고 있다가 아시안투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알게 됐다. 왕정훈은 “프랑스 오픈 직전에 이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자신감이 솟았고, 지금까지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오픈에서도 좋은 경기를 했던 것 같다”며 “성적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이번 스코티시 오픈에서 왕정훈은 실낱 같은 올림픽 출전 기회를 붙잡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가고 싶지만 의식하진 않고 있다. 디오픈 출전권도 마음을 비우고 있다가 잘 풀린 것 같다. 부담 없이 경기하겠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 선수는 스코티시 오픈이 끝난 다음날 세계 랭킹으로 확정된다.현재 왕정훈의 랭킹 포인트는 101.43이다. 스코티시 오픈 우승다 점수는 48점이다. 김경태는 146.55다.
프로암을 끝내고 식사까지 마친 왕정훈은 "링크스라고 크게 어렵진 않은 것 같다. 내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인버네스=원종배 기자
Won.Jongb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