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목록

불굴의 정신 남기고 떠난 '마스터스 영웅' 벤 크렌쇼

04.13 13:56

1972년부터 44년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마스터스에 참가했던 벤크렌쇼가 2라운드 홀아웃 후 기립박수로 격려하고 있는 팬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사진 출처 : ⓒGettyImages (Copyright ⓒ멀티비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또 한 명의 ‘오거스타 정복자’가 마스터스를 떠난다. ‘퍼팅의 달인’으로 불리는 벤 크렌쇼(63·미국)다. 크렌쇼는 9일(한국시간)부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제 79회 마스터스를 끝으로 44년의 여정을 마감했다. 올해 97명의 참가자 중 최다 마스터스 출전자인 크렌쇼는 “이곳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치열하게 싸웠다. 결정하기 힘들었지만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크렌쇼는 1라운드에서 19오버파를 쳤다. 본인의 마스터스 최악의 스코어다. 오거스타에서 이별의 발걸음을 차마 뗄 수 없는 듯했다. 2라운드에서도 13오버파로 부진해 컷 통과에는 실패했지만 팬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그들의 영웅’을 떠나보냈다.

크렌쇼의 패기와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크렌쇼는 마스터스에서 두 차례(1984, 1995) 우승했다. 준우승과 3위도 각각 2회, 톱10 진입도 11차례나 된다. 1995년에는 유리알 그린으로 악명이 높은 오거스타에서 3퍼트 없이 정상에 올랐다. 평균 퍼트 수가 1.528개에 불과했다.

스승 별세 전 마지막 지도 받고 일군 우승
크렌쇼는 “이번에는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다”며 마지막 여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는 첫 출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추어 골퍼였던 크렌쇼는 72년 처음으로 마스터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 19위로 아마추어 최고 성적을 거뒀던 그는 첫 티샷 장면과 함께 한 장의 상징적인 사진을 거론했다. 그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1번 홀 티박스에 섰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골프계의 두 거성인 바이런 넬슨, 진 사라센과 함께 수줍게 찍었던 당시 사진도 방에 걸려 있다. 크렌쇼는 “어떻게 둘과 사진을 찍게 됐는지 영문조차 모르겠다”며 웃었다.

 크렌쇼는 95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꼭 20년 전이다. 그의 멘토이자 스승인 하비 페닉이 세상을 떠난 지도 꼭 20년이 흘렀다. 95년은 마스터스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회자되곤 한다. 크렌쇼는 마스터스 일주일 전에 숨을 거둔 스승에게 마지막 지도를 받고 정상에 섰다. 병상에서도 페닉은 제자의 손을 꼭 붙잡고 “퍼팅할 때 퍼터 헤드가 절대 손보다 먼저 나가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크렌쇼는 정상에 오른 뒤 “영원한 멘토이자 친구인 페닉에게 우승을 바친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일자형 퍼터로 그린 지배한 ‘퍼팅 달인’
선구자이자 유명 교습가였던 페닉은 크렌쇼의 물 흐르는 듯한 이상적인 퍼트를 완성시켰다. 페닉의 이론을 바탕으로 블레이드(일자형) 퍼터로 부드러우면서도 힘들이지 않는 스트로크를 구사했던 크렌쇼는 현역 시절 내내 그린을 지배했다. 그는 “퍼팅이 잘 되는 날엔 그린과 몸의 일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온화한 성품으로 ‘젠틀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크렌쇼는 자신의 퍼터를 ‘리틀 벤’이라 부르기도 했다.

 95년 우승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또 있다. 80년대 중반 크렌쇼는 그레이브스 병(안구 돌출성 갑상선종)을 앓았다. 10년 만에 이를 이겨내고 마스터스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는 80년부터 13년 연속 마스터스 컷 통과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55세였던 2007년에도 55위를 차지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마스터스의 모든 것을 누린 크렌쇼에게도 아쉬운 게 있다. 마스터스의 창시자인 ‘골프 성인’ 보비 존스(미국)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오거스타의 설계를 주도했던 존스는 1971년 세상을 떠났다. 크렌쇼는 “존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에게 더욱 매료됐다. 존스야말로 모든 부분에서 한계를 뛰어 넘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최초로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위대한 아마추어’ 존스는 마스터스가 열린 첫 해인 34년부터 대회에 출전했다. 11번 참가했지만 우승 없이 공동 13위(34년)가 최고 성적이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 공유

자랑하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