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얼 서스펙트 장하나
03.22 03:32

장하나는 LPGA 투어의 유주얼 서스펙트다. 1990년대 중반 나온 같은 이름의 영화 때문에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경찰 용어 ‘유주얼 서스펙트’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용의자 명단에 올라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전에 비슷한 범죄 경력이 있고, 한 번 무언가를 해본 사람은 계속 그 일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건을 푸는데 유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장하나는 범죄 용의자가 아니다. 장하나는 자꾸 우승 경쟁에 등장하는, ‘뛰어난 선수’의 의미로 유주얼 서스팩트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LPGA 투어에서 더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부터 줄무니 스커트를 입은 장하나의 장타와 화려한 버디 세리머니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우승은 놓쳤다. 공동 3위를 했다.
지난해 12월 LPGA 투어 Q스쿨에서도 그랬다. 장하나는 첫날 공동 88위로 시작했지만 2라운드에서 7타, 3라운드에서는 무려 11타를 줄이며 선두에 올랐다. 압박감이 심한 Q스쿨에서 11타를 줄인 것은 놀라웠다.
1위가 당연해 보였다. 장하나는 “이 스코어로도 충분히 통과가 가능하지만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경기하겠다”고 말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게 분 마지막 라운드 8오버파 80타가 나왔다. 전날까지 벌어 놓은 게 워낙 많아 공동 6위로 Q스쿨을 통과했지만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았다.
장하나의 Q스쿨 순위는 라운드별로 88위-8위-1위-1위-6위였다. 순위는 일종의 롤로코스터였다.
올 1월 열린 시즌 개막전 코츠 챔피언십에서도 빨간색 줄무니 스커트가 또 등장했다. 첫날 67타, 둘째날 65타를 치며 선두로 올랐다. 마지막 라운드 최나연, 리디아 고와 챔피언조에서 우승을 다퉜다. 장하나는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공동 2위로 경기를 마쳤다.
2월 열린 호주 여자 오픈에서도 또 장하나가 나타났다. 난코스인 로열 멜버른에서 첫날 2언더파, 둘째날 4언더파를 치면서 선두권에 올랐다. 그러나 리디아 고와 한 조에서 힘을 겨룬 3라운드 3타를 잃었고 마지막 날에도 2타를 잃으면서 공동 7위로 경기를 마쳤다.
장하나는 어디서 숨어 있지 않는다. 태양이 뜨거운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열린 JTBC 파운더스컵에서도 유주얼 서스펙트는 또 용의선상에 올랐다. 21일(한국시간) 벌어진 2라운드에서 장하나는 11개 홀에서 7타를 줄였다. 일몰로 경기를 끝내지 못했지만 중간합계 11언더파로 단독 선두였다.
그러나 22일 속계된 후 파 3인 첫 홀에서 더블보기를 하면서 점수를 잃었다. 장하나는 바로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아 반등하는 듯 했으나 이후 두 홀 또 보기가 나왔다.
그는 LPGA 투어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의 장타는 OB가 많고 전장이 비교적 짧은 한국보다 LPGA 투어 코스에 적당해 보인다. 샷 거리가 짧고 비교적 얌전한 골프를 치는 한국 선수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깨는 데도 도움이 된다. 피닉스 와일드 파이어 골프장에서 사막의 뜨거운 공기를 뚫고 장하나의 티샷은 한 없이 날아갔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자주 우승경쟁을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가끔 컨디션 좋을 때 덜컥 우승을 하는 것보다 실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승이다. 장하나 같은 거물은 톱 10에 들려 경기하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우승 근처에만 머물러 있으면 좋지는 않다. 그냥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장하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우승 경쟁할 때 샷은 나쁘지 않았다. LPGA 투어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상황이 아직 낯설 뿐이다. 쇼트게임도 좀 더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하나는 그는 “곧 적응될 것이고 ‘역시 장하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최고의 우승 세리머니를 곧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호탕하고 자신감에 넘친다. 거친 승부의 세계에서 나쁘지 않은 성격이다.
속계된 경기에서 3타를 잃었지만 JTBC 파운더스컵 2라운드까지 장하나는 8언더파 공동 8위다. 선두와 3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조만간 진짜 사고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가 될 가능성도 있다.
피닉스=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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