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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제임스 한, PGA 투어 우승

02.23 09:37

쇼맨십이 좋았고 유머도 넘쳤던 제임스 한. 그는 멀고 험한 길을 돌아왔지만 이제 길을 뚫었다. [골프파일]

재미동포 골프 선수 제임스 한(34)은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유행하던 2013년 2월 반짝했다. PGA 투어 늦깎이 신인이던 그는 피닉스 오픈이 열리는 스코츠데일 TPC의, 야구장처럼 관중석을 만든 16번홀에서 버디를 잡자마자 퍼터를 놓고 강남 스타일의 말춤을 신나게 추면서 화제가 됐다. 유투브 조회수가 34만이나 됐다.

동영상 때문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유명해진 건 강남스타일 추는 골프선수이지 제임스 한은 아니었다. 무명이라 팬들은 물론 일부 동료 선수들도 그의 이름은 몰랐다. 제임스 한은 “클럽하우스에서 나와 한국계인 존 허를 헷갈리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강남이 윤택함의 상징이라면 그는 전혀 강남스럽지 않았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하고 투어 경비 마련을 위해 백화점 구둣가게 점원을 하기도 하고 유투브의 선수 동영상을 보고 골프를 배웠으며 세차장의 코인을 마커로 썼다.

그는 그런 얘기를 솔직하고 당당하며 유머 있게 했다. 미국 미디어는 제임스 한을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제임스 한이 성공하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나이도 적지 않고 경력이 워낙 일천해서다. 개성은 있지만 조용히 사라질 선수라는 뉘앙스의 기사들이 나왔다.

2년 새 강남스타일 인기는 수그러들었지만 말춤 추던 무명 선수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폭발했다. 제임스 한은 23일(한국시간) 미국 LA 인근 퍼시픽 펠리세이즈의 리비에라 골프장(파 71)에서 끝난 PGA 투어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우승했다. 마지막 날 2언더파 69타, 최종합계 6언더파로 연장에 들어가 3번째 홀에서 우승했다. 더스틴 존슨(31미국), 세르히오 가르시아(35스페인), 조던 스피스(22미국) 등 스타선수들이 우승경쟁을 했지만 제임스 한이 가장 빛났다.

제임스 한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듬해 미국으로 이민 갔다. 가족은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서 작은 골프 연습장을 운영했다. 제임스 한은 UC 버클리대 골프팀에 진학했다. 강압적인 운동부 운영에 반발해 골프를 그만뒀다가 졸업 후 다시 시작했다. 그때 투어자금을 벌려고 구둣가게에 다녔다. 제임스 한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구두 많이 팔았다. 그 쪽엔 자질이 있었다”며 웃었다.

2007년엔 한국으로 건너와 코리언 투어에서 뛰었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한 해 번 상금이 880만원이었다. 이후 캐나다 투어에서 뛰었다. 가진 돈이 200달러뿐이어서 캐디피를 빌려서 대회에 나갔고 대회장 호텔에서 직업을 구하려 인터넷을 뒤질 때도 있었다. 당시 대회에서 8등을 하면서 3000달러를 벌었는데 “나에겐 100만 달러였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PGA 투어의 2부 투어, 2013년부터 PGA 투어에서 뛰었다. 그의 나이 서른두 살. 선수로서는 하강기에 접어들 나이였다.

그가 계속 실력이 좋아진 이유는 뭘까. 제임스 한은 “가끔 거울을 보고 나에게 말하곤 한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조그만 도시에서 자랐고 대학에서도 잘 하지 못했다. 대학 올스타도 되지 못했다. 한 동안 신발을 판 사람이다. 어느 날 퍼트가 들어가기 시작하고 플레이가 나아졌다. 몇 번 우승했고 이 곳에 있지만 나는 아직도 무일푼으로 미니투어에서 뛰던 날을 기억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려 했다”고 말했다.

그가 받을 우승상금은 120만 달러(약 13억3000만원)다. 제임스 한은 “이 대회에서 5위 이내에 들면 13만 마일(약 21만km)에 10년 된 폭스바겐 제타를 타고 다니는 아내에게 차를 바꿔주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들어왔다”고 말했다. 제임스 한은 3주 후 첫 딸을 출산하게 된다. 이름을 이 골프장의 이름을 따 리비에라로 지을 수도 있다.

공동 3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배상문(29)은 한때 공동 선두에 올랐지만 후반 보기만 3개를 범해 4언더파 공동 8위에 그쳤다. 2년 전 제임스 한이 말춤을 출 당시 한 조에서 경기한 선수가 배상문이었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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