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목록

골프 볼 사람 차별하나 안 하나

02.09 18:32

골퍼의 헤드스피드에 맞는 골프 볼을 써야 할까. 아니면 모든 샷에 맞게 설계된 볼을 써야 할까? [고성진 프리랜서]

골프 볼은 사람을 차별한다! 차별하지 않는다! 골프 볼의 인간 차별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타이틀리스트는 “프로V1은 당신이 메이저 챔피언이든, 주말 골퍼이든 차별하지 않는다”고 광고 한다. 프로V1이 프로에게도, 아마추어에게도 가장 좋은 공이라는 말이다.

다른 업체들은 골프 볼은 사람을 차별하며, 아마추어에겐 프로용이 아니라 아마추어용 볼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캘러웨이의 CEO 칩 브루어는 “클럽 헤드와 샤프트 등 모든 장비가 스윙스피드에 따라, 근력에 따라 개개인에게 맞는 걸 쓰는데 유독 골프공만은 다 똑같은 걸 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볼빅과 던롭, 브리지스톤, 캘러웨이 등 대부분 볼 브랜드가 스윙스피드에 맞는 볼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가 맞을까.

볼이 골퍼를 차별하느냐 안 하느냐에서 중요한 문제는 공의 강도와 헤드스피드 관계다. 도전자들은 스윙스피드가 빠르지 않은 사람이 프로에게 맞게 제작된 단단한 공을 치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해 거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스릭슨과 젝시오 볼을 만드는 던롭 스포츠 코리아의 김세훈 마케팅 팀장은 “야구에서 가장 멀리 날리려면 딱딱한 공을 빠른 배트 스피드로 쳐야 한다. 그러나 야구선수처럼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없다면 딱딱한 공이 아니라 테니스공처럼 약간 물렁물렁한 공을 쳐야 멀리 날린다. 헤드스피드가 느린 골퍼는 딱딱한 공을 충분히 찌그러뜨리지 못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딱딱한 공은 헤드스피드가 느린 골퍼를 차별한다는 말이다.

타이틀리스트는 헤드스피드에 따라 다른 공을 친다는 생각은 잘못된 미신이라고 반격한다. 김영국 사장은 “스윙스피드에 따라 볼이 달라져야 한다면 같은 사람이라도 드라이버 칠 때와 웨지 칠 때 공을 바꿔 써야 한다는 말이냐”라고 했다. 골퍼가 드라이브 샷만 하지 않기 때문에 볼은 모든 샷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 공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프로V1은 모든 사람에게 거리도 가장 많이 나가고 스핀도 제일 잘 걸리는, 모든 샷에 잘 맞는 전지전능한 공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브리지스톤 백영길 마케팅 팀장은 “골프 볼 구분 원리는 간단하다. 거리를 더 보내려면 스핀을 줄여야 하고, 스핀을 늘리려면 거리에서 손해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업체들은 상급자용 볼과 아마추어용 볼을 구분해서 판다. 프로용은 스핀에, 아마추어용은 거리에 중점을 둔 볼이다.

타이틀리스트는 공의 단단한 정도를 표시하는 컴프레션은 비거리와 직접 관계가 적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 이홍우 볼 담당 매니저는 “컴프레션은 타구감, 내구성에 관계된 것이지 비거리와는 관계가 없다. 실제 테스트를 해보면 비거리는 론치 컨디션과 공기역학과는 관계있지만, 컴프레션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데이터가 나온다”고 말했다.

도전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론치 컨디션과 딤플 등의 공기역학도 비거리와 상관관계가 있지만 컴프레션도 비거리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J골프 매거진은 컴프레션과 비거리의 상관관계 테스트를 했다.

고려대 디스플레이 반도체 물리학과 김선웅 명예교수와 함께다. 스윙스피드에 따라 공을 쳐야 한다고 마케팅하는 브리지스톤의 4가지 종류 볼을 각각 헤드스피드 시속 70마일과 110마일에서 12번씩 실험했다. 골프로봇으로 24도에서 트랙맨3으로 실험했다. 볼은 e6(압축강도 44), R330RXS(66), R330 S(75) 및 e7(84)을 썼다. 사용 드라이버는 타이틀리스트 907 D1(10.5도)이다.

헤드스피드가 느린 경우 압축 강도가 작은 물렁물렁한 공을 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빠를 때는 단단한 공을 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70마일에서 압축 강도 66인 B330-RXS가 179.4야드로 가장 거리가 길었다. 캐리와 런을 포함한 거리다. 헤드스피드 110마일에서는 압축강도 84인 e7이 286.7야드로 가장 길었다.


김선웅 명예 교수는 “70마일에서 공 4개 중 가장 큰 차이는 4.4야드로 3.0%이며 110마일에서 차이는 4.3야드, 1.6%로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또 “압축 강도는 느낌이고 반발계수는 볼 속도다. 압축 강도에 대한 볼피팅은 없다고 봐도 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있다. 김선웅 교수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압축 강도와 반발계수를 비교한 (그림 2)를 보면 가장 단단한 압축강도 84 볼이 속도에 따른 내리막 기울기가 가장 작았고 75, 66, 44 순이었다. 이는 단단한 공일수록 빠른 스피드에서 상대적으로 반발계수가 큰 것이다.


A점의 왼쪽은 반발계수가 66이 가장 높고 75, 84 순이다. 이 지역에서는 66공을 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A와 B사이는 75 공을 치는 것이, B점의 오른쪽에선 84공을 치는 것이 거리에서 가장 좋다.

이를 통해 스윙스피드가 빠를수록 딱딱한 공을, 느릴수록 물렁물렁한 공을 쓰는 것이 거리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는 스매시 계수에도 나타난다. 김선웅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공은 딤플도 중요하다. 용품업체들은 헤드스피드가 느린 사람에게는 그에 맞게 공을 잘 뜨게하는 딤플을 만든다. 그러나 딤플의 영향을 조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은 유선형이 아니라 동그란데다 회전하기 때문에 항공우주공학으로도 그 비밀을 못 풀었다. 김선웅 교수는 “딤플 등의 변수는 완전히 배제했다”고 말했다.

J골프 매거진은 한 글로벌 볼 업체의 비공개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거리용, 부드러운 스핀용, 딱딱한 스핀용 공으로 분류한 거리 자료다. 거리용은 거리가 나지 않는 아마추어를 위해 거리를 더 내게 만든 볼이며 상급자용인 스핀용 볼은 그 중에서도 단단한 장타자용과 그렇지 않은 부드러운 볼로 구분된다. 헤드스피드가 비교적 느린 시속 78.2마일에서 비거리는 각각 180.9, 178.5, 179.3야드였다. 거리용이 가장 유리했다. 그러나 스피드가 빨라질수록 딱딱한 스핀용 볼이 유리했다. 거리차이는 4야드였다. 결국 스윙스피드와 볼은 관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도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는 작다. 김선웅 교수는 “실험대로 거리 차이는 적으면 2야드, 많아 봐야 4야드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 교수가 볼 피팅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근거다.

그래도 차이는 있다. 그 차이가 큰지 작은지는 각 골퍼가 판단할 문제다. 단 1야드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야드는 롱기스트냐 아니냐를 구분할 수도 있고 물에 빠져서 트리플 보기를 하느냐 그린에 올라가 버디를 잡느냐의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지난해 하나외환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전인지의 웨지 샷이 1m만 더 나갔다면 올해 LPGA 투어에는 백규정이 아니라 전인지가 가 있을지도 모른다. 1야드에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야구에서 1야드의 차이는 홈런과 외야 플라이의 차이가 될 수 있다. 타율 0.299짜리 타자와 0.300을 치는 타자가 한 포지션에 있고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감독은 0.300 타율의 선수를 쓸 것이다. 3할 타자는 경험까지 쌓일 것이고 0.299 타자는 자신감과 경험을 상실할 것이다. 두 선수의 5년 후 미래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커질 가능성도 있다. 육상 100m 스프린트에서 9.99초 기록을 내는 선수와 10.00을 뛰는 선수는 엄청난 차이다.

프로 골프 대회 우승자가 이븐파 288타이고 준우승자가 289타라면 그 차이는 0.34% 차이다.

값비싼 장타 전용 비공인 드라이버와 일반 드라이버의 거리 차이는 1~3야드 정도라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공에 투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골퍼가 얼마나 진지한가 아닌가에 따라서 아무 공이나 쓰느냐 자신에게 맞는 공을 쓰느냐가 결정된다.

물론 거리가 전부는 아니다. 거리를 선택하느냐, 스핀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한 화두다.

타이틀리스트는 “골프의 목적은 공을 멀리 치는 것이 아니고 적은 타수에 홀에 집어넣는 것이다. 스핀이 부족한 거리용 볼을 써서 그린을 공략했는데 공이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내리막 어프로치샷을 해야 할 때가 많아 더블보기를 할 확률이 크다. 투어의 데이터를 보면 쇼트게임이 뛰어난 선수가 투어를 지배하고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스핀을 중시한다. 그들은“150야드에서 컨트롤이 잘 되는 공으로 치는 것이 컨트롤이 잘 안되는 비거리용으로 130야드에서 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말한다.

타이틀리스트에 도전하는 쪽은 아마추어의 사정은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 주말 골퍼의 그린적중률은 낮다. 그린에 올라가는 볼 보다 못 미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럴 경우 스핀이 적은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굴러서라도 그린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브리지스톤 백영길 마케팅 팀장은 "스핀이 많은 공은 사이드스핀도 많아 슬라이스와, 훅이 잘 걸린다"고 말했다. 볼빅의 김주택 마케팅 팀장은 "주말 골퍼에겐 스코어도 중요하지만 호쾌한 한 방, 즉 비거리도 그에 못지 않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항상 그린에 도달하지 못했던 골퍼들이 그린을 넘긴다면 기분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아마추어 골퍼들은 프로처럼 딱딱한 그린에서 라운드하지 않는다. 스핀이 적어도 공이 선다.

어느 쪽도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타이틀리스트는 그린과 그 근처에서의 퍼포먼스를, 다른 업체는 티잉그라운드의 거리를 중시한다. 스핀과 거리 어느 쪽을 선택하든 미세한 차이가 커다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골프는 매우 예민한 게임이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 공유

자랑하기

닫기